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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07. 2016

램지 부인과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책장은 언제나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이사를 하거나, 방을 맞바꾸거나 가구의 배치를 변경하는 등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우선 책을 꽂고 체계적인 정리는 나중에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충 꽂아두지만 결국 다시 정리한다는 건 생각뿐 처음 자리 잡은 그대로가 정리의 마지막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비교적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이 한 곳에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은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읽어 내려가다가 마주친 글 한 토막에서 다른 글 한 토막을 떠올리는 것으로 책 읽기를 이어가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읽기는 대부분 어느 맑은 아침 '댈러웨이 부인'으로 시작한다.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수군거림이 유난히 신선하고 투명하게 느껴질 때, 그래서 오늘 아침이 어제와는 다른 신세계를 만나는 것처럼 놀랍게 다가올 때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찾아든다.



런던의 6월 어느 날, 델러웨이 클라리사의 아침은 저녁에 열릴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파티를 마치게 되는 저녁까지 하루 동안 그녀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녀가 가는 대로 따라다니는 것이 보통의 버지니아 울프 읽기이다. 그렇게 클라리사와 함께 지내던 어느 날 버지니아 울프의 또 다른 장편소설 '등대로'를 만났다. 두 권을 동시에 놓고 읽었다. 비 오는 새벽, 창문을 열어두고 어둑한 숲 저편에서부터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클라리사의 생각을 더듬기도 하고 높은 천장 아래 휑한 거실 의자에 길게 누워서 램지 부인의 치맛자락을 따라다니기도 했다'등대로' 속의 램지 부부는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며 작가는 이 작품을 쓰고 나서야 어머니와 아버지의 추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의 전체 줄거리보다 램지 부인이라는 등장인물이 무엇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잊고 있던 오랜 친구이거나, 아니면 숨기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램지 부인은 놀랄 만큼 아름답고 완벽한 오십 줄의 여인이다. 아이가 여덟 명이나 되고 까칠한 남편만으로도 버거운데 손님들까지 즐겨 초대하며, 하인들을 다루고 집을 손보고 정원을 가꾼다. 제각기 다른 개성과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보살피고 '최고로 찬란한 지성'인 남편의 보이지 않는 패배감을 감싸주는 것은 물론, 불우한 이웃들과 주변의 미숙한 남자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섬세하고 너그럽기까지 해서 '온종일 다들 이런저런 일로 그녀에게 다가와서, 이 사람은 이걸 원하고 저 사람은 저걸 원했다.  아이들은 한창 자라는 중이었고, 그녀는 가끔 자신을 사람들의 온갖 감정으로 가득 적셔진 해면'처럼 느끼기도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이 쉰에 머리칼이 세고 볼이 꺼진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어쩌면 좀 더 잘 꾸려 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한숨을 짓기도 한다. 남편과 아이에게 안심과 위로를 주고 난 바로 그 순간에 그녀가 느끼는 것은  '꽃잎이 하나씩 접히듯,  기진맥진하여 무너져 내리는 것, 겨우 손가락 움직일 힘 밖에 없는 듯한 노곤함'이지만 바로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녀 자신이 '여지없이 무가치하며 온갖 거짓말들과 과장들로 인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고통스러운 순간' 에도 슬리퍼를 끌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자신도 모르게 소리 높여 '안으로 들어가시게요. 카마이클 씨?' 하고 말을 건네는 여자다.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주부인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자기가 살아온 50년을 앞에 놓고 바라본다. '삶이 거기 있다는 것은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 느낌은 확실히 실감되면서도 자기만의 것이라 자식들과도 남편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삶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진행 중이었고, 그 거래에서 그녀는 삶을, 삶은 그녀를 줄곧 서로 이기려 들었다. 주변의 여자나 남자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뒤에 무언가 숨어있는 게 아닐까'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고, '우아한 자태를 벗어 버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눈에 띄지 않게 되고 싶다는 잠재적인 욕망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즐기고, 그건 그녀의 '허영심'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램지 부인은 작가의 다른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클라리사와 겹쳐진다. 클라리사의 파티에 나오는 설익은 연어와 램지 부인의 부드럽고 완벽한 쇠고기 스튜 이야기가 겹쳐지고 런던의  아침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바람이 스코틀랜드의 바닷가에서 램지 부인의 드레스를 펄럭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들이 같은 인물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네들이 자신의 삶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램지 부인이 자신의 삶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고 느끼는 장면은 '결혼해서 날이면 날마다 한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방임, 약간의 독립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피터와 헤어지고 리처드와 결혼한 클라리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한숨지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클라리사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 더는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들과 더불어 본드 스트리트를 걸어가는, 클라리사조차도 더는 아니고 그저 미세스 댈러웨이,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으로서 - 클라리사                 

램지 부인은 마을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선을 베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사회문제를 밝혀내는 연구자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그런 지적 훈련을 받지 못한 그녀와  '달리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생각할 줄도 글을 쓸 줄도 심지어 피아노를 칠 줄도 몰랐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올 것이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고, 공원을 산책하고,~~장미꽃을 받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느끼는 클라리사는 쌍둥이 자매처럼 닮았다. 그녀들이 '젊은 날의 승리'를 애써 외면하려 애쓰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십이 넘어서까지 행복하고 또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유는 세상을, 삶의 순간순간을 넘치도록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좀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싶었다. 어떤 즐거움도, 하고 그녀는 의자들을 바로 놓고 책 한 권을 서가에 꽂으며 생각했다. 어떤 즐거움도 젊은 날의 승리들과 결별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가 가끔 기쁨에 떨면서 해가 뜨는 것을, 날이 저무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는 비할 수 없었다.' - 클라리사

 


오래전 어느 과학자가 자신은 눈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노라고 고백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소리를 내건 아니건 꼭 입으로 책을 읽는 탓에 대사가 많이 나오는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모든 배역들의 대사를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읽으신다고. 그래서 희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기억이 없다는 그분은 최재천 교수님.


이번에는 나도 여느 때보다 책을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 내어 읽었기 때문은 아니고 그녀들의 생각, 그녀들의 시선을 따라가느라 느렸다. 한숨을 쉬면 같이 쉬고, 눈을 감으면 함께 감았을 뿐 아니라 바람에 커튼이 휘날리는 것도 바라보고, 파도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했으니 말이다.


 권의 책을 끝내고 며칠 뒤에 '밤의 도서관'을 뒤적이다가 만난 글귀.

'나는 램지 부인의 쇠고기 스튜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배가 고프고, ~~~'

스튜를 끓이되 이번에는 줄리아 차일드가 아니라 램지 부인의 스타일로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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