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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19. 2016

푸시킨에서 카잔차키스까지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

                                                

  강남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집으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가끔은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지하상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하에는 분식집이랑 옷가게, 신발가게들이 많았는데 상가가 끝나는 막다른 곳에 서점이 있었다. 집에 가는 걸 미루고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곤 했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곳에서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보았다, 얼핏 보기에도 20여 권이 넘어 보였다. 책들은 모두 두툼했고 양장본인 데다가 도스토옙스키라니! 그 앞에 서서 한참을 보다가 겨우 손을 뻗어 한 권을 꺼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집에 가서도 그 책들을 기억했다. 이미 온라인 서점이 있었던 터라 그 책들을 사자고 했다면 직접 서점에 나가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었고 가격이 부담스러웠다면 한 권씩 사도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둘 중 어느 행동도 선뜻 할 수 없었다. 난 그때 다른 공부를 하는 중이었고 아이는 초등학생이었다. 살림도 육아도 뒷전이고 뭔가 해보겠다고 책을 짊어지고 다니던 처지에 공부와 관계없는 소설책을 그것도 스무 권이 넘는 전집을 통째로 갖고 싶어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물론 그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넉넉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다른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에 한 번씩은 강남역 지하상가의 그 서점에 가서 그 책들을 확인했다. 제자리에 있는 걸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건 어쩌면 열병 같았다. 한동안 ‘백치’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등의 책들을 다시 볼 때마다 눈앞에서 그 책들이 이십 대 초반의 내 모습과 함께 어른거렸었다.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때 러시아 문학을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에 다닐 때는 카잔차키스에 빠져서 지냈다. 카잔차키스를 읽으면서 러시아 문학에 다시 한 번 가까워졌다. 사람 사는 모습은 시대나 장소에 관계없이 비슷비슷하지만 또 모두 달랐다. 러시아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는 건 고행 같았다. 어둡고 춥고 답답한 가운데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그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은 상대적으로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래서 모파상이나 플로베르, 발자크가 보여주는 것보다 인생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더 살만했다. 그런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틀어박혀서 책만 읽었던 시절도 있었다.




  책 속에서 다른 책이나 작가를 만나는 걸 좋아한다. 보통은 메모를 해 두거나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즐거워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게 톨스토이나 고골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어이 그 책을 손에 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읽다가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읽고 ‘영혼의 일기’를 읽다가 ‘러시아 기행’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은 사정이 다르다. 새로 알게 된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한때 내가 빠져있었던 작품들을 무더기로 다시 불러오는 일이 벌어졌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일어난 바람이 계속해서 내속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사실 저자의 블로그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끔 올라오는 그녀의 글에서 카잔차키스나 그리스를 언급한 부분을 읽을 때는 즐겁고도 놀라웠다. 너무 낯이 익었던 까닭이었다. 최근 그녀의 책이 나왔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란 다소 긴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여행기의 옷을 입고 있다. 일본에 가기 전날 밤에 도착한 책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고 오고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목차는 모스크바의 푸시킨으로 시작해서 크레타의 카잔차키스로 끝난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동안 내가 왜 그녀의 글들을 꼭 어디선가 먼저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가졌는지 알 것도 같았는데 그건 그녀가 중간중간 인용한 문장들과 언급한 작품들을 볼 때마다 조금씩 더 선명해졌다. 그녀는 이미 지나온 어느 한 시절의 나와 비슷한 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같다(물론 그녀의 박식함과 탄력 있는 문장에는 감히 다가갈 수조차도 없지만 말이다). 안나 그레고리예브나의 이야기나 헤르타 뮐러의 작품에 관한 언급에 이르면 꼭 둘이 마주 앉아 수다를 떨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드니 책으로 만나 홀로 만들어가는 인연 치고는 참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러시아에 산다. 그리스에서도 살았다고 한다. 이 책은 여행기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남프랑스, 베를린, 바이마르, 아테네를 만날 수 있다. 푸시킨과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쇼팽과 고흐와 괴테와 카잔차키스와 함께 간다. 길을 떠나면 잊고 있었던 꿈과 욕망이 전면에 나온다. 숨어있던 욕심과 불안도 따라 나오게 마련이다. 그녀의 블로그 이름은 '경계선에서'다. 언젠가 그 경계선을 훌쩍 넘어가기를 바란다. 그녀의 앞날을 기대한다. 비록 나는 여전히 주변인으로 남아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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