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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y 20. 2016

순수의 시대 - 은방울꽃의 계절

이디스 워튼

                                                                                                                 사는 건 잘 만들어진 밀푀유나 크루아상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속이 들여다보일 것처럼 얇아서 손으로 움켜쥐면 그만 바스러질 것처럼 여린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이고 모여서 하루가 완성된다고 여긴다. 크루아상의 결이 매끄럽게 살아있을수록 모양도 완벽해지고 그 맛도 좋아지는 것처럼 우리들이 쌓아놓은 매 순간들이 견고하고 아름다울수록 우리의 삶도 그만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풍미가 좋은 버터가 밀가루 반죽 사이에 완벽하게 스며들어가야 잘 만든 크루아상이다. 수백 겹이 넘는 층이 하나하나 살아있어 한 입 베어 물면 와사삭 부서지면서도 속에 숨어있던 버터의 향기가 신선하게 다가오고 바삭한 층층의 밀푀유 사이에 보석처럼 박힌 크림과 럼에 절인 말린 과일들의 향과 색도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아야 그 형태와 식감에 만족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만드는 하루에도 색을 입히고 향기를 더하면서 사는 것, 그게 요즘의 생활 모토다. 자칫 과정이 잘못되면 겉모양은 같으나 오래지 않아 형태가 일그러지고 눅지근해서 외면당하기 일쑤인 페이스트리처럼 거짓과 위선이 곳곳에 숨어있는 인생은 얼마나 가여운가. 해마다 은방울꽃이 한창인 오월에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처'와 '메이'에게 때로는  '올렌스카 백작부인'에게 나의 지나간 어느 순간을 겹쳐놓고는 아쉬워하기도 하고 가여워하기도 하다가 책을 다 읽어갈 때쯤이면 결국 모든 게 다 헛되고 부질없게 느껴져서는 그동안 고이 묶어 곁에 두었던 은방울꽃 다발을 멀리 던져버리고 만다.



잘 산다는 건 그렇게 연약하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조각들은 바스러지기 쉬운 페이스트리 같아서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허망하게 흐트러지고 부서지기 쉬우나 뒤돌아보면 아름답게 빛나는 지난날들이 거기에 있다. 마치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비슷했던 날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는 깨달음은 언제나 한참 후에 온다. 마치 지금은 시들어 내가 던져버린 은방울꽃이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싱그럽고 향기로운 것처럼.



이디스 워튼이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을 탔을 때 심사위원들이 밝힌 수상 이유는 '미국의 건전한 생활 분위기와 미국인들의 예의범절 및 남성적 미덕의 가장 높은 기준을 표현했다' 였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제목에 담긴 역설적 의미를 심사위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고는 하나 나로서는 백번 양보를 해도 어이없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으니 그들은 글을 읽은 게 아니라 글자를 해독한 것에 불과했음이 틀림없다. 순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거짓과 위선과 음모와 포기가 얼마나 많이 필요할까? 세월이 흐른 후에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를 속인 것은 세상이 아니고 바로 자신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아처'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올렌스카 부인'의 곁이 아니라 그저 '뉴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는다. 오래전에 엘렌(올렌스카 부인)을 만나러 갔다가 실패한 그날에 그는 이미 '끝없이 공허한 삶을 보내면서 아무런 사건도 겪지 않은 채 늙어 갈 한 남자의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게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기를 선택했다. 몇십 년이 지나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 엘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지만 외면한다. 이미 어긋나 버린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고 여긴 것일까?



평온하고 즐거운 날에도 문득문득 불안을 느낀다. 별일 없이 그냥 산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버린 탓이다. 얼음 위를 걷듯이 조심하고 염려하며 사느라 잃어버린 것, 포기한 것, 버린 것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초록색 나무 그늘 아래에 다른 모습의 평화로 머문다. 이건 이대로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으니 우리가 살아온 시간 역시 순수의 시대라고 불러도 되겠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순수의 시대'를 펼쳐 든다. 눈으로 문장을 따라가면 머릿속에서는 필름이 돌아간다. 책과 영화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그 속의 인생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시들어버리는 양귀비꽃 이파리처럼 연약하고 덧없어서 책을 덮는 순간부터 가벼운 몸살을 앓는다. 오월의 아름다운 저녁에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마다 몇 페이지라도 글을 읽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간 오월의 책들을 적어둔다.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조지 기싱,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스태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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