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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Oct 02. 2016

2016.8.18 -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오늘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놓고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기억합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하지요. 비록 머릿속 상상에 그치더라도 그런 생각은 지루한 일상에 상큼한 느낌표 하나를 찍는 일처럼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음식 몇 가지를 준비하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 야채를 씻고 고기를 굽는다는 것을요. 아끼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니까요. 한 발을 물에 담그고 있는 것처럼 균형이 안 맞아서 매일 조금씩 지쳐가는 중에 꽃병의 물을 갈듯이 쉼표 하나를 찍습니다.



오븐 앞에 서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덥지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동생과 함께 새우 넣은 김밥 싸고 로스트 포크를 만들었습니다. 샐러드 두 가지에 닭도 조금 튀겼지요. 아끼던 진저에일병을 열었고 커피시럽도 듬뿍 따랐습니다. 사진이 없이 말을 하려니 마치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고 하는 것 같군요(그래서 뒤늦게 스마트폰에 있던 사진 한 장 끼워넣었습니다). 여름을 보내고, 오후 3시가 끝나가고,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갈 날이 얼마 안 남은 8월의 어느 날, 저녁은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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