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에 대하여

by 라문숙


하루에 꼬박 대여섯 번씩 설거지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사이에 사용한 컵과 접시들(우리 집 식구들은 밤에도 끊임없이 마시고 먹는다)을 씻어내고, 아침 설거지를 한다. 점심 준비하느라 생겨난 설거지 감과 점심 식사 후의 그릇들을 다시 씻어낸다. 여러 달 동안 말썽을 부리던 식기세척기를 더 이상 사용하는 건 무리라고 결론을 지었으나 새로운 기계를 들이지 않은 것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손가락 사이로 거품과 물이 흘러내리면 유리컵들이 투명하게 반짝거리고 접시들이 매끄러워진다. 물을 틀어놓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릇들을 옮겨가며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손 안의 그릇들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미세하게 금이 가 있는 접시도 있고 모서리가 조금씩 깨어진 것도 있다. 이런 그릇들을 잘도 사용해왔구나 싶다. 문득 그릇이나 사람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유리컵들이 식기세척기 속에서 달그락 거리며 조금씩 상처를 입는 것처럼 우리도 그럴 것이라는 깨달음. 손으로 만지고 유심히 살펴야 그릇의 흠이 비로소 보이는 것처럼 우리 속의 상처와 아픔도 조용히, 천천히, 깊게 살펴야 할 것이라는 생각. 보여야 알게 되고, 알아야 어루만지고 보듬고 다독일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더러워진 그릇들을 세제와 수세미를 가지고 닦아낸 것이 전부인데 설거지라는 노동은 내게 각성의 시간을 주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 찬찬히 둘러보면 좋은 것들은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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