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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Apr 14. 2017

봄의 식탁

수국과 블루베리 아래에서는 부추가 자란다. 봄이 조금씩 무르익어 수국과 블루베리의 잎들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면 부추는 그들의 그늘에 가려져서 맥을 못 출 것이다. 가을에 접어들어야 떨어진 이파리들 사이로 하얀 레이스 양산 같은 꽃을 드러낼 테고. 부추가 부추로서의 제 몫을 해내는 건 짧은 봄 한 철이다. 처음 잘라낸 부추는 얼마나 곱고 향기로운가. 밀가루와 소금 약간, 그리고 부추가 재료의 전부인 부추전은 봄날의 점심으로 안성맞춤이다. 남편은 두릅나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어서 매일 안부를 건듯이 다녀오는데 그럴 때마다 한 손에 두릅 두어 줄기를 가져온다. 붉은 갈빛이 도는 두릅은 가시가 달린 것처럼 뾰족하지만 소금을 넣어 끓인 물에 데치면 순하고 부드러운 초록색으로 거듭난다. 고추장과 식초와 간장을 동일한 비율로 섞은 초고추장을 만들어 곁들이거나 국간장과 깨소금, 참기름으로 무치면 봄의 미각이 깨어난다



봄은 몸살을 앓는 여인처럼 주춤주춤 왔다가 아이스크림이 녹듯이 흔적만 남기고 홀연히 가버릴 것이다. 오고 가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그저 보고 즐기면 될 일인데 상추가 자라고 잔디 사이에 잡초가 올라오는 걸 볼 때마다 조바심이 난다. 여전히 뭔가 빠진 것 같아서 그렇다. 메모지와 흐트러진 볼펜들을 정리하다가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놀란다. 가만히 들어보니 남편의 핸드폰 알람 소리다. 소쩍새 울음소리와는 비슷하지도 않다. 소쩍새가 울고 뻐꾸기가 찾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천지에 가득한 봄은 미련없이 가버릴텐데, 나는 가는 봄이 서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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