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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30. 2017

밥은 누가 하는데?

   며칠 전부터 나갈 일이 있다고 식구들에게 미리 알려두었다. 어쩌면 저녁 시간을 넘겨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계절을 넘겨 만나는 오랜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친구만 괜찮다면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헤어지고 난 후 혹시라도 시간이 남으면 하고 싶은 일도 있었다.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 다니기, 상점들 앞에서 기웃거리기, 온갖 일들에 정신을 팔기, 넋 놓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서점에서 시간 보내기, 그러다가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돌아오기. 

  

  친구를 만났다. 아침은 먹었느냐는 인사가 첫 번째다, 혹독했던 여름과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버린 가을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폭염의 밤들과 호우의 퇴근길, 끊어진 물과 낙뢰로 고장 난 전기기구,  큰 애의 상견례, 늙어가는 개, 휴가와 제사와 명절을 이야기하다가 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무심코 던진다. 남 이야기를 하듯이 나이 먹었다고, 턱선이 흐려지고 눈도 침침한 걸 보니 늙는 게 맞다고 한 쪽이 툴툴거리면 다른 한쪽이 보자기로 덮듯이 감싸 안고, 한쪽이 서러워하면 다른 한쪽은 질박한 찻잔에 뜨거운 차를 따랐다. 


  

  점심은 미술관 앞 작은 국숫집에서 먹었다. 버섯 맛이 나는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떠 넣으며 김장은 했는지, 요즘 뭐 해 먹고 사는지, 점점 귀찮은 게 많아져서 시장 가는 재미도 줄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제 혼자서도 식당에 들어가는 게 익숙해졌다는 친구는 집에 있으면서도 때가 되면 밥을 먹으러 나간다고 했다. 어쩌다가 생긴 휴일이면 밀린 집안일들을 해치우고 식구들을 위해 밑반찬들을 만들어서 냉장고를 채우기에 바쁘지만 정작 자신의 끼니는 스스로 차리기 싫어서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작은 식당으로 간단다. 이십 년 넘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친구는 이제 자신만을 위해서 식당에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밥을 거를 수는 없지만 그 밥을 매일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주고받긴 했지만 우리의 마지막 화제는 그날 저녁 반찬으로 무엇이 좋을까였다.




  학교 다닐 때는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끼니때마다 어김없이 배가 고파지는 내 몸이 미운 적도 많았다.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외면하고 싶었고, 견딜 수 없어지면 재빨리 해결하고자 했다. 허기가 지면 가까운 곳에서 당장의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걸 찾았다. 하숙집 아줌마가 따끈한 국을 끓여주는 날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낮에는 혼자였다. 생각이 많아서 살림도 제대로 못하고 살림 아닌 일도 제대로 못 했다. 거의 매일 허둥대다가 하루가 가곤 했는데 그런 날들의 점심은 학교 다닐 때나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못한 것들이었다. 배가 고파서 시계를 보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있기 일쑤였는데 뭔가 먹어보려고 해도 마땅히 먹을 게 없을 때가 많았다. 혼자 있으면서 혼자 먹는 밥에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때였다. 국이나 찌개가 있으면 데워서 남은 밥에 붓거나 밥 위에 반찬을 얹어서 먹었다. 그릇 하나면 족했다. 먹는 것만큼이나 뒤처리도 단출해서 좋았다. 하지만 찬밥은 뭉쳐 있기 일쑤였고 배가 고픈 데다가 양 조절도 제대로 못하고 급하게 먹은 탓에 탈도 많이 났다. 그렇게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저녁 준비할 마음이 싹 달아나는 게 사실 더 큰 문제이기도 했다. 갑자기 남편에게 저녁 약속이 생기기를 바랐던 때도 많았다. 그때는 밥 먹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일 같았으니까. 먹는 거 말고 그렇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던 그 많은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주부가 하는 일 중 가장 비중이 큰일이 밥 짓는 일이란 걸 몰랐다.
결혼 후 한동안 내게 가장 큰 질문은 ‘밥은 누가 하나?’였다. 




  30년 가까이 밥을 했지만 여전히 밥상 차리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신혼 시절에는 대낮부터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했을 만큼 손도 느리고 요령도 없어서  음식 만들기는 고역이었다. 오죽하면 휴가 때 집을 떠나는 걸 좋아하는 이유 중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밥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을까.



  제법 상 차리기에 익숙해진 요즘에도 친구를 만나거나 책모임을 위한 약속이 생기면 한두 끼니의 식사 준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다. 전날 샌드위치나 김밥을 만들어 두기라도 하면 나가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집을 나서는 내게 남편은 저녁까지 먹고 천천히 놀다 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놀고 싶을 때까지 즐기다가 천천히 돌아온다고 다짐은 하지만 밥은 마음보다 몸에 더 새겨져 있게 마련이어서 해가 이울면 식사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모른 척할 수가 없다.



  오늘은 밥 생각 따위 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고 나온 날에도 밥은 따라온다. 사소하지만 무서울 만큼 집요한 일상의 대표로서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능청스럽게도 내 자리에 앉아있다. 식구들이 무얼 먹을지 궁금해하고 제대로 챙겨 먹을 수는 있을까 걱정도 한다. 혹여 내가 잊을까 봐 이제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평소와 같은 시간에 저녁상을 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보낸다. 집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내가 밥하는 여자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진다.  못 이긴 척 일어나 집으로 향하면 가다가 두부라도 한 모 사들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참견까지 해대니 나로서는 밥을 이길 재간이 없다. 도깨비 같은 밥이다.



  남편이 은퇴를 했다.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 세 번 상을 차린다. 최대한 간단하게 차린다고 해도 준비하고 먹고 치우기를 하루 세 번이라면 역시 수고다. 새해에는 아이도 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밥상에 무게가 더해졌다. 은퇴한 남편이 요즘 내게 인심을 쓴다. 더할 수 없이 달콤한 유혹이다. 이제 아이 학교도 끝나가고 자기도 집에 있으니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해보란다. 그동안 애썼으니 이제 그동안 허기졌던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내가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밥이 먼저 나선다. 


밥은 누가 하는데?


 자신이 없어서 망설일 때, 섣불리 나섰다가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일상의 평화만 흐트러뜨릴까 염려가 될 때, 요모조모 따져보니 이제 와서 나서는 것은 역시 무리라는 결론일 때, 게으름과 귀찮음이 나를 잡을 때 여전히 만만하고 무서운 밥을 핑계처럼 쓴다. 


밥은 누가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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