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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l 03. 2018

당신은 문맹인가요?

아고타 크리스토프


헝가리 국경의 작은 마을, 전쟁이 막 시작됐고 아이는 네 살이다. 그녀가 벌써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종종 벌을 주기 위해 아이를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보냈고 아이는 교실 뒷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작은 아이가 읽을 수 있다는 건 신기한 구경거리였다가 이윽고 비난거리가 된다.


그리고 특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쟤는 ......을 하는 대신에 읽기만 해."
무엇을 하는 대신에?
"더 실용적인 것은 아주 많잖아. 그렇지 않아?"
여전히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이 비고, 모든 이웃들이 일하러 나가면 나는 다른 것을, 
그러니까 청소를 하거나 어제저녁의 설거지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다리거나, 
잼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대신 식탁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신문을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 대신에.
pp.13~14

 '문맹'의 첫 번째 장은 이게 전부다. 나는 여기서 멈추었다.



프랑스의 마르세유 교외에 살고 있던 오귀스틴은 시장에 갈 때면 학교에 들러 남편이 예닐곱 살짜리 아이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던 교실에 네 살인 마르셀을 맡기곤 했다. 마르셀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은 아버지에게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최고로 자랑스러운 날이었던 반면에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머리가 터져버릴지 몰라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린 날이었다.

 '문맹'의 첫 장을 읽다가 갑자기 '마르셀의 여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리워졌다. 내게는 여름방학의 시작 같은 책이다. 방학은 내 앞에 길게 놓여있고 숙제와 학교는 아득히 멀리 있을 뿐 아니라 마당에서는 벌들이 붕붕대고 공기에서는 매콤한 햇빛 냄새가 난다. 걱정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돌아가야 할 현실도 아직은 멀기만 해 그저 뒹굴며 마음껏 고독해도 좋은 여름날 같은 책을 찾아내어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중간중간 좋아하는 장면들을 찾아 읽으며 허기를 달랬다. 마음에도 그늘이 있다는 걸 알았다. 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축축했던 곳까지 보송하게 말려주고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기를 얻은 후에야 '문맹'에게로 돌아왔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그런 '딴짓'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문맹'은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얇은 책이고 '마르셀의 여름'은 500페이지가 넘는 책 두 권으로 되어있다. 두 작품 모두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르셀 파뇰 식으로 말하자면 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골 작은 학교의 교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네 살이 지나기 전에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네 살에서 시작해 오십여 년의 세월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다. 동생을 놀리다가 혼이 나는 것도 지금이고 연필과 펜과 체육 준비물을 빌리고 신발을 수선하는 동안 신을 신발이 없어 누워서 지내는 가난도 현재다. 넉 달 된 어린 딸을 안고 헝가리의 국경을 넘고 스위스에 정착해서 프랑스어로 말하고 쓸 수 있을 때까지의 의심과 불안과 절망이 켜켜이 쌓인 현재의 시간들은 그녀의 몸속에 차곡차곡 쌓여 시가 되고 희곡이 되고 소설이 된다. 



스물한 살의 젊은 엄마였던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를 탈출해서 난민이 된다. 국경을 넘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쓴 그녀는 그러나 가방 속에 사전들을 가지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서 살게 된 그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공장에 다닌다. 저녁에 아이와 함께 집에 오지만 때로는 그녀가 아이의 말(프랑스어)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어떤 때는 아이가 그녀의 말(헝가리어)을 이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녀의 일터는 '작업이 단조롭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며, 기계들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공장'이었다. 서랍에 종이와 연필을 넣어 두고 시가 형태를 갖추면 그녀는 썼다. 저녁마다 그것들을 노트에 깨끗이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그녀는 작가가 되었다.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말이다.

네 살에 이미 읽을 수 있었던 그녀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다시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스위스에 정착한 지 오 년이 지났고 프랑스어를 말할 수는 있었으나 읽고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정체성도 함께 잃어버린 그녀가 오 년 동안 읽고 쓰지 못했단 사실을 떠올리자 이 책의 시제가 현재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대로 흘려보내도 괜찮은 시간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어디에서건 어떤 언어로든지 글을 썼으리라고 확신하는 그녀의 글쓰기에 관한 갈망이 지나온 시간을 생생하게 살아있게 한 것이 아닐까. 펄떡이며 살아있던 삶의 모든 순간들은 글로 옮겨지고 나서야 비로소 과거가 되어 쉴 수 있을 것이었다. 

블루베리가 통통해지고


제주도에서 가져온 소박한 양귀비가 피고


수레국화가 극성이다


장미는 진다


꽃이 하는 말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종종 빠진다. 강아지들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것도 아마 착각일 것이다. 문장을 뒤집어 보면 거기 작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숨어있을 것 같아 글을 읽을 때마다 몸살이 난다. 곡진한 삶을 이처럼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로 쓸 수 있는 힘은 아마 절망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슬픔의 사막 너머까지 가닿았던 경험에서 온 게 아닐까 싶다. 나란히 앉아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받아들이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부끄럽다. 켜켜이 쌓여 단단해진 지층만큼이나 굳어진 인상과 오해와 단정 지음에 대항할 방법을 어쩌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선물처럼 받은 책.


'문맹'의 아고타 크리스토프처럼 사전과 사랑에 빠진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이어 읽었습니다.  마르셀 파뇰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어를 잃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지만 그 일은 자신에게 '강제된 일'라고 말합니다. 줌파 라히리는 영어에서 숨고 싶은 마음, 이미 인정받은 작가이지만 다시 자라고 싶은 갈망으로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집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로 말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라거나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다는 중얼거림을 이제 멈춥니다. 서로에게 문맹임을 알았으니 이제는 상대의 언어를 공부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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