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큐어 리무버

by 라문숙


대보름을 앞두고 나물거리들을 사러 갔던 날, 화장품 코너에 들렀다. 골라놓은 스킨과 크림을 계산하던 아가씨가 한 마디 한다.

"매니큐어는 안 바르세요?"

"안 발라요."

"손톱이 부러질 것 같아요. 매니큐어 바르면 손톱이 강해져서 안 부러져요."

매니큐어를 언제 해봤을까? 도무지 기억에 없다. 손톱 자를 시기를 놓친 건 사실이다. 저녁에 핸드크림을 바를 때마다 손톱이 길다는 생각은 했지만 늦은 밤, 손톱을 자르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손톱이나 발톱은 볕이 잘 드는 마룻바닥에 앉아서 느긋하게 잘라야 할 것 같지만 정작 한낮의 느슨한 시간에는 좀처럼 손톱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 외출하기 직전 서둘러 자르는 게 다반사다. 내가 봐도 손톱 끝부분의 희게 변한 부분이 길긴 하다. 번개같이 매니큐어 두 개를 들고 와서는 발라주겠다고 한다. 사양했다.

"바르면 예쁘실 것 같아서요."

"괜찮아요."

"손톱도 보호되고 좋은데."

왼 손을 내밀었다. 그중 연해 보이는 색을 골랐다. 새끼손톱, 그리고 그 옆의 손톱까지 발랐을 때 손을 뺐다. 생각보다 너무 밝고 화사했다. 그 밝음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쁘잖아요?"

"여기까지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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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왔다. 팥을 삶고 나물들을 불리고 데치고 짰다. 계란을 삶아서 장조림 만드는 데 넣었다. 세탁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했다. 색을 입힌 손톱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화사한 분홍이 섞인 베이지톤의 손톱이 얹힌 손가락 두 개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왼 손은 둘로 나누어졌다. 두 개의 색 손가락과 세 개의 그냥 손가락으로 나뉜 손을 볼 때마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예뻐서 한숨이 나오고 우중충해서 한숨이 나왔다. 주부에게 매니큐어의 유효기간은 한나절이었다. 그날의 부엌일이 끝나자 매니큐어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손톱 끝부분부터 둘쭉날쭉 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벗겨내고 싶은데 벗길 방법이 없다. 평소 매니큐어를 하지 않으니 집에 리무버가 있을 리 없다. 한숨이 또 나왔다. 그냥 안 한다고 할 걸. 그렇지 않아도 칠칠맞은 아줌마 꼴이 보기 싫어 죽을 지경인데 손톱마저 이렇게 지저분해져 버렸으니. 지워달라고 또 갈 수도 없고. 아, 난 왜 리무버 하나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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