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볕이 곱게 들어오는 자리에 세워두고 찰칵찰칵 소리 내며 찍었다. 몇 시간 지난 후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 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찍은 것은 분명 겨울 아침 햇살 속에 빛나는 장미와 튤립과 유칼립투스인데 사진 속에 보이는 건 나의 게으름, 나의 무신경함, 나의 건망증, 그리고 나서야 꽃이었다. 하긴 언제나 그렇다. 사진을 찍어보면 내가 찍고 싶었던 것 주위로 온갖 것들이 다 보인다. 읽다 말고 덮어둔 책, 씻지 않은 컵, 텅 빈 물병, 말라버린 귤껍질, 빈 쇼핑백과 택배 상자, 바스락거리는 꽃잎들, 설날에 꺼냈던 커다란 냄비와 볼과 바구니들을 아직도 치우지 않았구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면 사진을 찍어보면 되겠다. 그 사진 속에 널브러진 며칠을 들여다보면, 그래, 어쩌면 그것들을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모르겠다. 하나씩, 천천히 치우고 들어내고 정리하다 보면 숨통이 트이려나. 나를 찍어볼까. 아마도 출렁이는 물이 보일 것 같아.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찍는 사진기, 어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