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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r 22. 2020

코로나의 봄

출간 후 열흘이 지났어요


새벽이다. 지난밤에도 불을 켜둔 채로 잠들었나 보다. 책이 나온 지 열흘이나 지났고 마지막 교정쇄를 넘긴 건 그보다도 열흘 정도 전이므로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올 법도 하건만 지난 몇 달 동안 헝클어진 수면 사이클은 아직도 엉망이다. 갓난아기처럼 밤낮이 바뀌었다. 낮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멍했고 밤에는 깨어있어야 한다는 각오로 버텼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잠들어있기 일쑤였다. 수성펜을 든 채 그대로 잠이 들어서 베개며 잠옷, 이불 여기저기에 잉크 자국이 남았다. 때로 꿈속에서도 모호한 문장을 앞에 두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밤들이 있었다. 이제 춘분이 지났으니 잠이라도 제대로 잤으면 싶다. 봄이다.



봄을 맞이하러 나간 건 아니었다. 춥지 않은 겨울이었으나 이른 봄이 오리란 기대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도 묶이고 설렘도 사라졌다. 답답함이라도 덜어볼까 싶은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기 봄빛이 있었다. 눈을 크게 뜬다. 앵두나무도 사과나무도 움직인다. 작년에 산에서 날아온 마른 참나무 이파리를 뚫고 히아신스가 나왔다. 크로커스도 튤립도 수선화도 벌써 삐죽 키가 컸다. 나만 모른 거였다. 뭘 탓하고 싶어서 집 안에 들어온 봄마저 모른 척했을까?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미안해서 며칠 계속 물을 준다. 마당에 호스를 풀어놓고 물을 틀면 고양이들이 달려온다. 호스 안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호스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군다. 쌓아둔 낙엽들을 걷어내고 흙을 고를 때도 곁을 떠나지 않고 눈을 깜박이며 야옹거리다가 지치면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다. 새싹이 난 꽃밭에서 내달리고 뒹굴다가 비어있는 화분을 옮겨 다니며 자기도 한다. 이제 곧 씨앗을 뿌릴 텐데 알아서 비켜주려나.



오후에 내 침실에서 오른쪽으로 난 창밖을 바라보면 나무들이 보인다. 집 옆으로 경사가 진 산등성이에 키 큰 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다. 지금은 3월, 산은 아직 훤하다. 새잎은 미처 돋아나지 않았다. 낙엽 속에 파묻힌 나무둥치 옆으로 군데군데 성급한 초록들이 보인다. 아마도 붓꽃이나 양지꽃 아니면 상사화의 잎일 것이다. 오후의 햇살에 나뭇가지들은 그림자를 만들어 집의 하얀 벽에 부려놓는다. 바람이 불면 그림자 속 나뭇가지가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때로 오소소 떠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때면 나도 같이 어깨를 움츠리고 뭐라고 말이라도 건네고 싶다. 강풍 경보가 내린 날, 닫아놓은 창 너머로 우르릉거리며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던 오후.



케이크를 만들고 닭을 굽는다. 팬 바닥에 오렌지 시럽이 좀 남아있을 때 반죽을 부어야 촉촉하다. 닭은 구울 때 타임이나 로즈메리를 뿌리곤 하는데 떨어진 지 이미 오래다. 허브라고는 작년 여름에 말려놓은 바질이 전부다. 소금과 후추와 올리브오일에 버무린 닭에 바질 가루를 뿌리며 '마른 바질 냄새는 행복하군'이라고 생각한다. 바삭 마른 여름이 그 안에 있다. 구운 닭을 접시에 덜어내고 껍질이 달라붙은 법랑 접시를 물에 담가놨더니 그걸 본 아이가 하는 말,

"제일 맛있는 게 여기 붙어서 설거지로 직행했네!"

닭을 못 먹는 나로서는 여전히 신기할밖에.



조용한 날들을 보낸다. 책 모임도 나들이도 취소 아니면 연기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시장에 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노란 산수유와 약국 앞의 긴 줄을 바라보며 놀란다. 모르는 사이에 봄이 온 것 만큼이나 마스크를 사려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생전 처음 마스크를 쓰는 날들이 간다. 행복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지금은 그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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