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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Feb 01. 2019

왜 울어



"당신, 어제도 자면서 나를 꼬집었어."


아침 식탁에서 남편이 그랬다. '어제도'란다. '어제도'라니. 처음 있는 일이 아니란 소리다. 때리기도 한단다. 하긴 요즘 잠자리가 요란하기는 하다. 잠꼬대를 하다가 그 소리에 놀라 깨기도 하고 밤새 꿈속에서 헤매다가 지쳐서 아침을 맞이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베개가 젖는 날도 있으니. 하긴 꿈속에서만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다. 주방용 두꺼운 에이프런을 두르고 빈 접시들이 쌓인 쟁반을 나르는, 아직은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에서 살구빛 볼연지를 발견했을 때,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들고 지나가다가 금방 튀겨낸 도넛이나 붕어빵을 발견했을 때, 장 볼 것들을 적은 메모지를 들고 다니면서 카트에 물건들을 담다가 삼각형 커피우유를 발견했을 때, 얇아진 러닝셔츠나 고무줄이 늘어진 속옷을  접을 때, 세탁실로 들어온 오후의 햇살 아래 앉아있을 때, 두통약을 찾느라 뒤지던  책상 서랍 속에서 박엽지에 고이 싸인 원고지 뭉치를 발견했을 때.





누가 왜 울어 하고 물어봐 줬으면. 그 질문에 대답해봤으면.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고, 저녁노을이 지는데 시장 간 엄마가 아직도 안 오셨다고, 새로 산 구두를 잃어버렸다고, 제일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가버렸다고,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르는 남자친구가 사라졌다고 대답하면서 꺼이꺼이 울어봤으면 좋겠다. 내 가슴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들여다보려 해도 커튼을 닫은 창문처럼 답답하기만 하니 그 어둠은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남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나와의 차이만큼이나 멀고 아득하다.  무겁고 뻐근한 가슴으로 잠이 들어서는 꿈속에서야 우는 모양이라 허옇게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발견하는 아침들이 있다. 잠꼬대를 하면서 화내고 울었다는 식구들 얘기를 몇 번 들으니 이제는 잠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잠이 엄청 많은 사람이라 이런 저간의 사정이 슬프고 우습고 또 부끄럽다. 내가 나를 달래고 어르면서 잘도 살아왔구나 싶다가도 억울하고 불쌍한 기분이 든다. 그걸 몹시 후회하는 건 아니고 또 앞으로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 자신도 없어서 아. 이럴 걸 왜 말은 꺼냈을까 하면서 또 답답해한다.  꿈속에서처럼 푸짐하게 울었으면. 누가 왜  울어 하고 물어봐 줬으면. 그에게 내가 우는 이유를 백몇 개쯤 늘어놓았으면. 그렇게 홀가분하고 맑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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