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참 이상해

4월 물주기

by 라문숙


가물다. 여주에 갔던 날도 양평을 지나던 날도 메마른 공기에 먼지가 섞인 냄새가 났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집에서 나온 후에야 비가 없는 봄이 어떤지 보였다. 새로 갈아엎은 밭둑의 흙빛이 회색이다. 낯설고 걱정스럽고 슬픈 빛깔.



지난겨울은 짧았다. 2월이 가기 전에 붉은 작약의 싹을 발견했고 상사화와 산마늘이 돋아나 반가웠다. 이른 봄은 그러나 사월에 접어들며 멈췄다. 새벽 찬바람은 싸늘하게 찾아와 떠나지 않고 종일 어느 구석에 머물다가 틈만 나면 마당을 휘젓곤 해서 꽃봉오리가 열리다가 얼어버리거나 새잎이 펼쳐지는 도중에 멈추고 꽃잎 위로 흰 눈이 내려앉기도 했다. 봄이 부릴 수 있는 심술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모른 척 매일 새로 돋은 잎과 뻗어나는 가지를 찾으며 잡풀을 잡아당기고 흙이 묻은 뿌리를 털었다.



물은 매일 준다. 기온이 떨어지는 거야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만 메마른 땅을 적셔줄 수는 있다. 물줄기가 만드는 무지개를 따라가다가 쏟아지는 물에 젖은 흙을 밟고 시든 꽃대와 숨어 자란 잡풀들을 뽑아내는 나날이 간다. 비는 흡족하게 한 번, 야박하게 두어 번 왔다. 비가 내린 다음날은 어김없이 물을 준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충분하게,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물을 줬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음을 비 온 다음날 마당을 바라보면서 알게 된다.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야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토베 얀손, 여름의 책. p.60


꽃이 한창 필 즈음 비가 내리면 꽃잎이 떨어질까 봐 마음 졸이던 나날들이 그리웠다. 빗물에 뒹구는 분홍빛 꽃잎들을 마음에 담아두던 날, 비 예보가 있으면 꽃을 자를지 말지 고민하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가문 탓에 벚꽃을 오래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여전한 꽃잎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 사람은 제때 지지 못한 꽃잎이 안타깝다.



점심때 가는 비가 잠시 내렸다. 구름이 물러간 후 덱에 비친 파란 하늘빛에 눈이 시렸다. 땅을 충분히 적시기에는 한참 모자란 양이었으나 그래도 반갑다. 무엇이든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부서진 나무 화분을 엮어 만든 묘판에서 새싹들이 나온다. 루콜라, 고수, 바질, 순무의 씨앗들에게는 이렇게 부드러운 비가 더 좋을지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좋은 것, 놀라지 않게, 믿을 수 없어 되묻지 않게, 행운을 의심하느라 즐기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그 정도가 딱 좋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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