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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May 10. 2020

쓰는 사람 1 - 시작

글이 손가락 끝에서 나온다고?

"글을 긁어서 모아주세요."

"네?"

글을 긁는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처음으로 편집자와 만난 자리였다. 낯선 단어가 나오면 되짚어 물어가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글을 긁는다는 건, 마우스 버튼을 눌러 선택하고 복사해서 붙여 넣는 일, 그러니까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문서 파일로 만들어 달라는 말이었다. 출간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글을 쓰는 일‘이 아닌 ‘글을 긁어모으는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한글 프로그램을 구입했다. 블로그의 글들을 모두 복사했고, 사진들의 원본을 찾았다. 어떤 글이 책에 포함될지 알 수 없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빼놓지 않았다. 파일 용량을 줄이고 이름을 바꾸는 것도 배웠다. 책을 만드는 온갖 것들이 처음이었고 나는 그 ‘처음‘들에 푹 빠졌다.  내게도 집안일 외에 ‘달리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책에 실릴 글들을 제대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그건 전문가, 즉 편집자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책은 그렇게 나의 무지와 무책임으로 진행됐다.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모니터에 글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는 걸 보고 있기만 해도 흡족했다. 나도 ‘뭔가를 하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다. 이십 년이 훌쩍 넘도록 전업주부로 살면서 종종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지 몇 달 후 첫 대지가 나왔다. 검토하고 수정하라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처음에는 오탈자를 찾아내고 띄어쓰기나 문장부호의 잘못이 있는지 살피다가 차츰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나누고 이어 붙였다. 두 번째로 원고를 검토할 때는 훨씬 과감해져서 단락을 자르고 새 문장들을 넣기도 했다. 처음 경험하는 즐거움이 거기 있었다. 생각도 못했던 문장과 단어들이 써졌다. 글은 손가락 끝에 고여있다가 키보드를 누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왔다. 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즐거움을 여태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쓰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멀미가 났다. 거의 그대로 보내버린 첫 번째 교정쇄가 아쉬웠다. 낭비한 즐거움이 너무 아까웠다.


  막상 책이 출간되자 허전했다. 사실은 책이 나오기 전, 마지막 교정쇄를 보낸 그날부터였다. 비밀을 갖는 기쁨, ‘달리 해야 할 일‘이 사라졌다. 해가 구름 뒤로 숨어버린 것처럼 내게만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쓴다’는 행위가 가져온 기쁨과 쓸 일이 없어진 허전함을 되새김질하던 어느 날 편집자를 다시 만났다. 마주 앉은 그이가 내게 말했다.


“그냥 쓰시면 될 것 같은데요. 글을 올릴만한 플랫폼이 꽤 있어요.”


  플랫폼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검색창을 열고 플랫폼을 검색했다. 나는 스스로 쓰는 사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사람들과 사물들, 겪은 일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일상이 선명해졌다. 정체를 몰랐던 감정들과 애매한 상황들을 언어로 바꾸는 일이 내 안의 압력을 낮췄다. 글을 쓸 때마다 나도, 세계도 조금씩 말랑해졌다. 그렇지만 나와 글쓰기 간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쓰는 일은 깊이 들여다보고 정확히 옮기는 것이라 몸과 마음이 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해졌다. 날 선 신경으로 쓰기와 살림을 오가는 일은 버거웠다. 살림은 손에서 놓을 수 없었으나 쓰기는 그렇지 않았다. 쓰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쓰지 않아도 뭐라 할 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쓰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지면 괴로웠다.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감추느라 허둥거렸다. 쓰는 감각을 알지 못했던 때가 그리웠다. 나는 자꾸만 모르는 이에게서 출간 제안 메일을 받았던 그 겨울의 하루로 돌아가곤 했다. 넣어두었던 미완성의 글들을 읽기도 했다. 글 속의 순간들로 돌아가는 일은 긴장을 풀기에 좋았다. 메마른 식물들이 비를 맞아 생기를 되찾는 것처럼 나는 느긋해졌다.


  그러기를 몇 번이었을까. 문득 내가 이미 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래 전의 글을 읽던 때였다. 내가 글 속에 담아두었던 보통의 날들, 풀잎에 내려앉은 이슬을 보았을 때, 어느 늦봄 흙 속에서 기어 나오던 두꺼비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때, 뙤약볕 아래 달아오른 토마토를 베어 물던 때가 바로 내 글쓰기의 시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출간을 이야기하던 날이 시작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건 삶의 매 순간이 하나의 시작임을 알게  계기였다. 순간은 스스로 자라서  금세 과거가 되어버리기 일쑤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내 앞에 놓인 ‘지금’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제 나는 내가 끊임없이 지난 시간들을 소환했던 이유를 안다. 뒷걸음질을 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거였다. 내게 ‘지금’은 아직 너무 작아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씨앗과도 같다. 그러니 조심해서 다룬다. 모든 시작이 그렇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오래 숨죽이고 기다려야 하지 않던가. 내가 머뭇거리느라 한 걸음씩 늦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것일 것이다. 정확하고 싶은 마음, 섣불리 단정 짓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 싹이 트고 본잎이 나온 후에야 안심할 수 있는 마음들 말이다. 순간이 시작이 되게 하는 힘은 바로 내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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