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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토마토

by 라문숙

마트에 갈 때마다 토마토 앞에서 멈춘다. 그 거침없는 빨강을 맞닥뜨리면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집 마당의 토마토에 노란 꽃이 피고 단단한 초록 열매들이 달릴 즈음부터 잎이 누렇게 물들고 꽃봉오리도 생겨나지 않아서 더 이상 토마토가 열리기를 기대할 수 없을 때까지의 몇 달을 포함한 사계절 내내 그렇다. 사실 마당에서 토마토 몇 알이 붉게 익어가는 그때가 내게는 토마토가 가장 귀한 계절이다.



탐스럽고 붉은 토마토를 그냥 지나쳐야 하는 이유들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마트의 토마토보다야 내가 기른 토마토가 더 맛있다는 것이 첫 번째다. 수확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할 시기라면 '토마토는 금방 익으니까'라는 이유가 있다. 며칠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뭐있어 하면서도 토마토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토마토를 듬뿍 넣고 끓인 카레, 토마토에 모차렐라를 얹은 샐러드, 소금과 설탕을 뿌린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 같은 음식들을 떠올리며 토마토가 쌓여있는 곳을 등지는 나는 그러나 빈 손이 아쉽다. 아무에게도 들리지는 않겠지만 작은 한숨을 쉬기도 한다. ‘마당에서 토마토가 익어가고 있으니까' 하면서 탐스러운 토마토를 애써 외면하고 그대로 지나칠 때마다 자신이 마치 '나한텐 발톱이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느껴진다. 왕자가 떠날 때까지 울음을 참을 만큼 오만했던 장미, 바람도 벌레도 괜찮을 거라며 덤덤한 모습을 보이던 꽃, 발톱이 있으니 커다란 짐승들이 찾아와도 괜찮다는 ‘순진한’ 장미 말이다. 간다는데 어쩔 것인가? 보낼 밖에. 가지 말라고 생떼를 쓰고 울어버리기라도 했다면 그 글을 읽는 내가 조금 덜 아팠겠지.



산처럼 쌓인 토마토 옆을 그대로 지나쳐서 집으로 돌아와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슬리퍼에 발을 꿴다. 토마토는 매일 익어간다. 방울토마토는 동그랗고 대추 방울토마토는 길쭉한 타원형이다. 올해는 큰 토마토도 심었는데 어른 주먹 크기보다 더 큰 토마토가 여러 개 달려서 신기하고 기쁘다. 토마토 잎을 문질른 손을 코에 갖다 대고 킁킁거리거나 반짝이는 토마토를 한 줌 따거나, 끓는 물에 넣어 껍질을 벗긴 토마토로 절임을 만드는 일이 즐겁다. 토마토는 자라고 점점 커져서 언젠가는 붉어질 것이다. 토마토 정도야 사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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