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문숙 Jan 17. 2021

작가들의 짧은 여행

올리비아 랭

  올리비아 랭의 [작가와 술] 도입부에 에코 스프링 이야기가 나온다. 에코 스프링 Echo Spring은 버번위스키 브랜드 명에서 따온 단어로 정적(靜寂)을 얻거나, 술을 진탕 마시면서 골치 아픈 생각을 잊는 것과 연관된 의미다.  술주정뱅이 브릭이 아버지에게 불려 가 일장연설을 듣고 나서 한 말이 "에코 스프링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려고요."*다. 에코 스프링, 메아리의 샘, 랭은 듣기 좋고 위안을 주는 이름이라고 썼다. 나도 동감한다.


  에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요정이다.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슬픔으로 몸은 없어지고 메아리가 되었다는 그 요정이다. 버번위스키 브랜드를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에코 스프링이란 단어를 마주하는 순간 에코라는 이름의 수다쟁이 요정과 수선화가 되어버린 나르키소스를 떠올리는 게 한층 자연스러웠다. 에코 스프링이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그 샘물일까. 사랑의 고통으로 나르키소스의 육신이 사위어가는 걸 지켜보던 에코가 비할 데 없는 슬픔을 수선화로 피어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강과 숲의 요정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숲 가득 되울리면서 에코는 그 샘물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르키소스에게 거절당한 아픔으로 목소리만 남게 된 에코는 자기 자신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죽어버린 나르키소스를 기억하며 샘물주변에 머물다가 잠시나마 세상의 소란에서 도망쳐온 이들에게 고요와 정적을 선물하는지도 모르겠다. 버번위스키를 만드는 그 주류회사가 브랜드 네이밍을 할 때 신화를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화가 늘  그렇듯이 변덕스러운 신들은 지나침을 경계하므로 숲 속에 감춰진 샘물을 너무 자주 찾아오거나 혹 그곳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알콜중독이란 멍에를 씌울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술을 많이 마시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몇몇은 대낮에도 술냄새를 풍기며 강의실에 들어왔다. 우리들은 왜 그렇게 에코의 샘물에 자주 갔던 것일까.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모호함이 불안과 죄의식을 키웠을 것이고 왜 그런지도 모른 데다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없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늘한 샘물가에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잊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믿었을까, 잠시나마 누군가가 정해놓은 세상 안 자신의 자리에서 슬쩍 도망칠 수 있겠다고 여겼을까. 그때도 에코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남편은 언젠가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 마신 다음날 술냄새가 싫어서 남편을 쫓아내고 싶었던 나도 학교 앞 '고모집'에서 아침부터 막걸리를 마셨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남편은 술을 좋아하지 않고 나는 혼자 마시는 술이 재미가 없지만 냉장고에는 와인 몇 병이 항상 들어있다. 새로 딴 와인의 첫 잔은 언제나 내 몫, 나머지는 고기 요리를 하거나 수프를 끓일 때 넣는다. 설거지가 끝나면 한 잔 마셔야지 생각은 자주 하지만 매번 잊고 그냥 올라와버리기 일쑤다. 한 잔 와인을 마시기에도 번거로움과 귀찮음을 넘어야 하다니 존재(몸)가 의식(마시기)을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예다. 올리비아 랭이 소개한 어느 금주 모임의 기도처럼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키우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조금 덜 피곤해질 테고 와인을 가지러 내려가는 일쯤은 수고도 아닌 게 될 텐데. 


*테네시 윌리암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중에서.

이전 13화 작가만은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하지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