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와 시몬 드 보봐르
가위눌림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자, 그것으로부터 깨어나는 나의 방법 또한 몇 단계로 변화했던 것이 생각난다. 첫 번째 단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에 휩싸인 채 본능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움으로써 내게 극심한 육체적 아픔을 가해 오는 가위눌림 속의 그 억압자를 쓰러뜨리고 깨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온 힘으로 저항하다가 그 와중에 나 자신이 또다시 가위에 눌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리하여 이제는 공포감 없이, 싸우면 내가 이기도록 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싸워 깨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가위눌림이 시작되자마자 그것이 가위눌림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나 경험으로 보아 어쨌든 간에 조만간 깨어나도록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 억압자에 대한 저항 자체를 포기해버리고, 그러자마자 이상하게도 그 가위눌림이 서서히 풀어지는 것이다.
(중략)
가위에 눌려 본 사람(바로 나다. 종종)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아무리 소리치려 해도 비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얼마만큼의 힘을 쓰며 저항한 뒤에야 비명이 터져 나오고, 그것이 자신의 귀에 들리게 되면서 비로소 그 가위눌림으로부터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최승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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