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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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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l 28. 2021

7월의 일기

선풍기 돌아가고 매미 우는 달

 


  한 잔 차가 가장 간절할 때는 찻잔 하나 내려놓을 자리가 없을 만큼 주방 싱크대와 아일랜드가 복잡할 때, 그 복잡함과 어수선함이 마음까지 헝클어뜨릴 때다. 야채조각들이 널브러진 도마와 뚜껑 열린 양념병들과 행주와 숟가락과 씻어야 할 그릇들을 한편으로 밀어놓고 찻자리를 만든다. 말린 사과와 라벤더 꽃이 듬뿍 들어있는 홍차는 [겨울잠]이란 이름을 갖고 있어 가끔씩 불면을 호소하던 아이에게 만들어주던 것인데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찻잎을 모두 털어 넣고 우렸다. 내킬 때까지 연거푸 마시고 찻물을 더 부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밤새 추운 잠을 잔 차는 다음날 친구처럼 따라붙을 것이다.   


  

  냉장고가 가득 찼다. 냉동고도 마찬가지다. 미처 소비하지 못한 산딸기와 라즈베리 탓이다. 이제는 비워야 넣을 수 있다. 꽁꽁 언 불고기감과 치아바타를 꺼낸다. 시금치는 마늘과 올리브유에 볶고 치아바타는 반으로 갈라 얼마 전에 만든 바질 페스토를 바른다. 시금치를 얹고 불고기도 바싹 볶아서 올린다. 치즈를 쌓아 올려 오븐에 굽는다. 빵을 반으로 갈랐으니 두 개가 나온다.  딱 좋다. 상추에 양파와 깻잎, 빨간 무를 넣고 고춧가루와 간장, 깨소금, 매실청을 조금만 넣어 버무린 상추겉절이를 곁들인다. 나야 물론 엄마가 만든 알감자 조림이 먹고 싶다. 쫄깃하고 반짝거리는 그것을.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어야 해서 다행이다. 매일 세탁물이 쌓이고, 쓰레기가 나와서 고맙다. 드문드문 약속이 생기고 명절과 제사가 있어서, 챙겨야 할 대소사가 있어서 숨통이 트인다. 그런 것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내 안에 갇혀서 필시 터져버렸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스가 아쓰코’를 읽는 날이 있다. 종일 들고 다니지만 사실 하루에 읽은 양은 아침에 읽은 만큼이 전부일 때가 많다. 밤에는 책 표지만 골똘히 바라보다가 잠자리에 든다.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서서히 내가 사라지고 분주했던 여름날도 사라진다. 담백하고 앙상하다. 포근함, 따뜻함, 반짝거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툰 공감이나 어설픈 위로 같은 것들은 끼어들 자리도 없다. 오래전에 만난 사람,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썼을 뿐이다. 오래전 이탈리아에서 산 일본 작가라 나와는 딱히 공통점도 없다. 매일, 종일토록 작가의 글이 가진 힘의 정체가 궁금하다. 어느 아침 집을 감싼 안개를 보며 이건가 싶은 때가 있었다. 스며들기였다. 무엇도 거스르지 않고 구석구석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것, 있는 그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쓰는 것, 그리고 단정 짓지 않는 것. 가만히 읽고 있으면 그녀가 만든 공기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어 나도 가만한 사람이 된다.    

 

 

오이를 슬라이서에 밀면 오이의 날개가 나온다(투명할 만큼 얇은 오이 조각을 나는 날개라고 부름). 가지를 찌면 보라색 물이 나오고 붉은 양파를 썰면 분홍색 즙이 남고. 아무것도 더하기 전, 온전한 모양과 드러난 속살과 솔직한 냄새를 가진 야채들을 만지는 시간이 좋다. 흐르는 물에 씻고,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빼고, 탁탁 소리 나게 썰어 볶고 무치고 삶는 일은 바로 나를 깨우고 달래고 키우는 일이다. 나는 그 시간을 먹고 산다.    

  


누가 에세이스트가 되는 방법을 물어왔다. 그런 게 있나요? 하고 되묻고 싶었다. 좋은 책을 알려주세요, 글쓰기 팁을 주세요 라는 질문보다 답하기 어렵다. 매번 재미있는 책이 좋은 책이고 오래 품어온 질문에 답하는 게 글쓰기의 시작이란 답을 해왔는데 이번 질문은 부끄러울 뿐이다. 종일 나를 지켜보았다. 35도가 넘는 여름 땡볕 아래 꽃잎이 만드는 그림자를 따라다니다가 후다닥 뛰어들어와 찬물로 설거지를 한다. 점심 식탁을 치우는 대신 오래된 동화책을 들고 의자에 파묻힌다. 에세이스트요? 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죠. 의혹의 눈초리를 견뎌내고 오해의 강물을 건너고 말보다 침묵에 익숙하여 설득하기보다 이해하려고 애쓰느라 답답해 보일지도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보세요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올해는 매실을 거두지 않았다. 예년보다 꽃도 적더니 열매도 거의 열리지 않아 마당 매실 담기는 일찍부터 포기했다. 가끔 나무 밑에 매실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면 모아 치웠다. 모양도 향기도 볼품이 없는 그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씩 노랗게 물이 든 매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랑하니 노란 매실을 손에 쥔 순간 끼쳐오는 향기.     


어머! 어머낫!

너 이런 애였어?

본색을 몰라주는 아줌마가 서운했던 거야?

그래서 부러 열매도 맺지 않고 잊히기를 바랐던 거야?

이파리 사이에 숨어서 몰래 익어가면서 향기를 모아뒀던 거야?     


속으로 생각하는 단계를 벗어나 소리 내어 중얼거리다가 아예 말을 건다. 정신 차리고 보면 고양이들과 얘기를 하고 있다. 뭐 토마토나 오이에게 잔소리를 한 지는 벌써 꽤 되었으니. 아무래도 요즘 만나는 사람도 적어지고 글자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병이 난 게 아닐까 싶다. 책을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가끔 멀리서 비행기가 지나는 것 외에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적요한 숲, 화살처럼 내리 꽂히는 뙤약볕, 공기에서는 설핏 해초 마르는 냄새가 난다. 바다가 그리운가. 모래사장을 조금만 파도 깨진 조개껍질이며 소금이 하얗게 묻은 바다식물들을 볼 수 있었던 오래 전의 어느 여름에, 그때는 세수하다가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거나 한밤중에 느닷없이 찬 물을 뒤집어쓰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젖은 머리로 거울 앞에 앉았더니 오랜만에 소쩍새가 울었다. 반갑고 서럽다. 날은 덥고, 숨을 곳도 없고, 점심때는 다가오고. 낮잠 자던 고양이가 잠에 취한 눈으로 그림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 마당에서 오늘은 나도 어리둥절하다. 여기가 거긴 지, 내가 그 사람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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