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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Apr 16. 2022

어떻게 지내요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고 계시나요? 누군가 물으면 그럼요! 물론이죠! 잘 지내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온다.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되물으면 즉각적으로, 마치 질문과 대답이 한 세트인 것처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같은 대답이 튀어나온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한 번 물어봤다. 어떻게 지내고 있어? 대답이 쉽게 안 나온다.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며칠에 한 번은 마트에 간다. 카톡이 울리고 택배가 도착한다. 밥을 짓고 머리를 자르고 냉장고를 채우고 화장품을 사 오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직박구리가 주목 우듬지 가까운 곳에 새 둥지를 꾸미느라 소란한데 나는 몇 달 전에 도착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처음 들여놓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볼 때마다 어딘가 제자리에 놓아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그 책들을 읽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책을 읽는 이유가 책 속에 어떤 글들이 쓰여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면  이미 읽은 그 책들을 살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건 다시 읽고 싶어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치 처음 읽듯이 말이다. 방금 글을 읽게 된 아이처럼 글 속의 이야기들에 새로이 매혹당하고 싶어서였다. 아마 다시 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뭘? 읽는 것을, 그리고 사는 것을!



 그동안에 겨울은 가버렸다. 봄이 들어선 자리에는 벌써 떨어진 꽃잎들이 뒹군다. 이른 봄에 소망을 담아 묻은 씨앗들이 손톱만큼 작은 잎을 내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모든 식물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쩌면 죽어서 흙 속에 묻힌 채로 남아 있는 씨앗들이 있을 것이다. 씨앗을 심을 때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기에 새로 돋은 싹을 살피다가 문득 영영 보이지 않을 씨앗들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겨울이 흔적도 없는데 몇몇 덩굴은 여전히 침묵에 잠겨있다. 너른 마당도 아닌데 시작하는 것들과 이미 끝나버린 것들이 함께 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는 나뭇가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으면 등 뒤에 내려앉은 햇살이 어느새 뜨겁다.



 밤에 나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지나간 하루를 생각한다. 그제야 그날이 제대로 보인다. 창밖은 어두워서 보이는 게 없지만 머릿속에 넣어둔 것들은 보인다. 일이야 매일 생기고 하고 싶은 일도 매일 바뀌므로 머릿속은 거의 항상 포화상태다. 그렇지만 나는 곧 잠이 들고, 잠든 사이에 하루가 끝난다. 그러나 새벽이 있다. 정직할 수밖에 없는 시간. 골칫거리들은 절대 그대로 끝나버리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전쟁이든 기후위기든 반찬 걱정이든 간에 일상의 질서는 얼마나 안정적인지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견고한 틀에 갇혀버린 듯하다. 창밖으로 아침이 밝아오는데 이렇게만 살고 싶지는 않아서 느닷없이 조바심이 난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달려내려가게 되는 내리막길이자 올라올 때는 숨이 턱에 차올라 여러 번 걸음을 멈추게 되는 언덕길을 지나 몇 년 전에 생긴 근처 도서관에 매일 걸어서 가겠다는 결정을 할지도 모르고 이제는 끼고 있을 필요가 없다며 집안의 책을 모두 팔아버리다가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별안간 마당의 화분을 모두 치워버리고 잔디 위에 자갈을 까는 상상을 해본다. 냉장고를 없애버리면 건강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아침이 밝아오는 창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그 느닷없음과 엉뚱함에 웃음이 터진다. 지루하고 심심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그 지루함과 심심함이 문득 사람들이 나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아닐까 주목한다. 언제부턴가 시선은 나를 통과하여 그대로 지나간다.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어쩌면 곧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는지도 모른다. 관심을 끌기 위해 뭐든지 할지도 모르겠다. 반짝이는 스카프로 머리를 휘감거나 목소리를 키우거나 커다란 우산을 들고 다닐 수도 있겠다. 오. 말도 안 돼. 그건 안될 일이다. 그렇지만 곧 나는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귀찮아서라도 게다가 게으르기까지 하므로 나는 아마 계속 자유로울 것이다. '마음대로 강둑에 앉아 돌을 던져도 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지루함과 심심함에도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대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어떻게 감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다시 청년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비밀이고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주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 년생 라일락 한 그루를 심었다. 내가 지켜보고 나를 보아줄 나무다. 연분홍색 꽃이 핀다. 그러니 이제는 괜찮다. 아무도 내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주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느리기는 해도 세상에서 가장 정밀한 자와 저울을 가진 내가 나를 매일 지켜보고 있으니까. 게다가 작고 향기로운 라일락도 있으니까. 그런데 당신은?

 

 당신은 어떻게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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