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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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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n 30. 2022

마당의 여름

6월의 순간들


6/3


    레인지 위의 냄비 뚜껑을 열고 아차! 했다. 양념을 털어 헹군 묵은지 반 포기가 그 안에서 밤을 새웠나 보다. 어제 저녁 준비하면서 들기름 넣어 김치찜을 하려던 게 김치만 헹구고 잊어버린 거다. 들기름 냄새가 집안에 퍼지고 냄비 뚜껑이 들썩거린다. 불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뭉근하게 두어 시간 끓이면 부드러워서 좋아들 하더라고 친구가 알려줬던 음식이다. 알람을 맞춰놓고 세탁기에 이불을 넣어 돌린다. 세탁실 창밖으로 살구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살구는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홀가분해서 춤추기는 좋겠네. 뻐꾸기가 산을 옮겨 다니면서 운다. 새벽잠을 깨운 그 뻐꾸기일까? 목 안 아프나? 그만 울어라. 얘야.



6/10


    루콜라와 로메인을 뜯어와 소금과 후추를 갈아 넣고 올리브 오일과 식초를 뿌렸다. 며칠 전부터 붉던 산딸기와 나란히 아침거리가 되었다. 아픈 이에게서 씨가 없는 과일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인가 세상 모든 과일이 두 가지로 나뉘네. 씨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산딸기, 당신은 탈락이군요.



6/11


    앵두가 이렇게 익도록 뭘 했을까? 매일 나와서 둘러본 줄 알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본 거다. 오이가 달렸나 토마토가 익었나만 살핀 게지. 이도저도 아니면 상추 몇 장 뜯는 게 고작이었거나. 먹고사는 일이 벅차면 하늘 한 번 올려다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어른들 말씀이 그른 게 없다. 그런데 너, 뭐가 문제냐?



6/16


    늦은 밤 빗소리가 컸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치는 소리, 숲의 나무들이 몸을 떠는 소리, 돌담 사이를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떠올렸다. 쏟아지는 비를 맞고 있을 수밖에 없는, 고깔처럼 빗물을 머금고 있을 꽃들을, 기어이 투명하게 변해버리고 말 꽃잎들은 비가 그치면 오래된 종이처럼 바스러져버릴 것이다. 몇몇은 줄기마저 꺾이고 부러지겠다는 생각으로 맴을 돌았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없는데 느리게 걷고 있는 이가 있으면 왜 뛰지 않을까 의문을 갖지 말고 다가가 우산을 나눠 쓰자고 해볼 것. 뛰지 않는 게 아니라 뛰지 못하는 거라는 걸 며칠 전  처음 알았다. 뭘 보고 살아온 것일까. 빗소리가 회초리처럼 느껴지던 밤. 지금 비는 그쳤다.



6/17


    엄마 집에서는 모든 것이 쉽다.  하루 세 번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마다 먹는 것도 쉽고 싱크대 가득 쌓인 설거지도 쉽다. 거실에 요를 깔고 눕는 것도 쉽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을 곧잘 잔다. 냉장고가 가득 차 있어도 답답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도 불안하지 않다.  무엇보다 엄마 집에 다녀오면 다짐이 생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비어있는 일기를 들여다보고 답하지 않은 메일을 살핀다. 싱크대 물기를 한번 더 닦고 비어있는 양념통을 채우고 연필을 깎는다. 엄마를 생각하면 힘도 나고 웃음도 난다. 오이지 위에 누름돌을 얹으며 오래오래 변하지 말고 잘 익으라고 주문을 왼다. 꽃대가 나오게 생긴 상추를 뽑고 새로 사 온 모종을 심었다. 완두콩을 마지막으로 거두고 앵두 잼을 만들고 시든 장미를 자른 오늘, 6월 17일.



6/20


    외출이 드물고, 그 외출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더 드문 일이다. 그렇게 특별한 날에 만난 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안 순간이면 바람이 반쯤 빠진 물놀이용 튜브처럼 말랑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내 일상적인 삶의 평범한 저녁에 새로운 세계를 향한 어떤 가능성의 길이 보이는 듯한 기분에 취해서 돌아오는 길, 모퉁이를 돌면서야 튜브에서 빠져버린 건 그저 바람이 아니라 내 속 깊고 어두운 곳에 고였다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슬픔과 분노와 절망의 찌꺼기들이었음을 깨닫는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



6/21


    처음에는 고양이 왔다! 놀라 도망갈까 봐 문도 못 열고 창 너머로 엿보는 게 전부였다. 차츰 밥그릇, 물그릇이 생기고 택배박스로 만든 집도 여러 채 생기고 핫팩과 사료 주문을 놓치면 눈을 흘기는 시기가 왔다. 다치고 병들 때마다 찾아와 며칠 자고 먹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떠나는 녀석도, 몸 풀 때가 되면 돌아오는 어미 고양이도 이제는 서로 얼굴을 안다. 문만 열면 튀어 들어오려는 녀석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나저나 장마가 곧 온다는데 어쩌나.



6/22


    아침마다 오이 몇 개, 고추 몇 개, 산딸기와 블루베리를 두어 줌 딴다. 상추가 끝나 홀가분하지만 토마토가 안 익어 심란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마당에 나갔을 때만의 이야기다. 방에 있을 때는 모니터와 책장만 들여다보고 주방에서는 먹을 생각만 한다. 비누 거품을 구름처럼 만들어 세수를 하고 마른 타월을 반듯하게 갠다.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크림을 바르고 <깊은 숲 속 향기>라는 이름이 붙은 스프레이를 칙칙 뿌리고 아침까지 깊은 잠을 잔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싶다. 내일부터 비가 내린다기에 라벤더를 잘라 들어오라고 했으니 오늘 밤은 꿈도 없겠다.



6/25


    완두콩 씨앗을 뿌릴 때 하얀색 완두 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이 싹이 날 때도 오이 생각을 할 뿐 노란 오이꽃에 가슴이 아릴 정도로 두근거리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아스파라거스 뿌리를 묻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갈색 흙덩이를 뚫고 솟아오른 손가락만 한 아스파라거스는 당혹감을 주었다.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잘라먹어야 하다니 말이다. 즙도 많고 향기도 맑고 달콤하지만 식재료보다 신기한 식물로만 보였던 봄은 벌써 아득하게 멀어졌다. 내 키만큼 자라 자귀나무 꽃처럼 부드러운 잎을 거느리고 종 모양의 꽃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아스파라거스가 이제야 편안하다. 자라고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순한 아이. 새싹을 잘라먹은 사람은 나.

완두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갔고 토마토는 붉게 물든다. 늙는 기분이 든다. 뻐꾸기는 몇 살이나 살까?



6/28


    비가 그친 사이에 바구니 들고나갔다. 유리창 너머 쌀뜨물 같은 하늘 보기에 지루했던 참이다. 며칠 햇빛을 쬐지 못했는데도 오이는 자라고 블루베리는 익는다. 라즈베리 옆 치자 향기가 시든 꽃조차 던져버릴 수 없게 그윽하다. 오이 무쳐 저녁 먹고 베리들은 내일 아침 몫으로 점찍는다.



6/30


    방은 안락하고 평온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본다. 유리창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따라가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쫓기도 한다. 벽에 걸린 그림과 엽서들을 차례로 바라보기도 하고, 내가 아끼는 책들이 꽂힌 서가를 따라 시선을 옮기기도 한다. 집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비의 기세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날개를 퍼득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 같아서야 더 깊은 고요가 지배하는 밤이 찾아올 때까지 이렇게 앉아있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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