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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

by 라문숙


완두콩 씨앗을 뿌릴 때 하얀색 완두 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이 싹이 날 때도 오이 생각을 할 뿐 노란 오이꽃에 가슴이 아릴 정도로 두근거리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아스파라거스 뿌리를 묻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갈색 흙덩이를 뚫고 솟아오른 손가락만 한 아스파라거스는 당혹감을 주었다.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잘라먹어야 하다니 말이다. 즙도 많고 향기도 맑고 달콤하지만 식재료보다 신기한 식물로만 보였던 봄은 벌써 아득하게 멀어졌다. 내 키만큼 자라 자귀나무 꽃처럼 부드러운 잎을 거느리고 종 모양의 꽃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는 아스파라거스가 이제야 편안하다. 자라고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순한 아이. 새싹을 잘라먹은 사람은 나. 완두는 다시 씨앗으로 돌아갔고 토마토는 붉게 물든다. 늙는 기분이 든다. 뻐꾸기는 몇 살이나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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