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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산책

by 라문숙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좋다. 복잡한 길을 걷는 것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달리는 자동차들과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지나치는 걸 겁내지 않는다. 저녁이 오면 더 좋다. 사람들을 자세히 볼 수 없어서 그렇다. 걷는 이들은 무엇엔가 쫓기듯이 점점 더 빨리 나를 지나친다. 다가온 순간 벌써 저만큼 멀어져 있다. 그런 시간에는 아무도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니 내가 그곳에서 무얼 하는지도 전혀 모른다. 서둘러 집에 돌아가는 이들은 사랑스럽다. 그 순간에 일종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걸 보면서 행복하다. 어둠이 내려앉는 거리를 혼자서 걸으며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아무도 나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을 본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바람이나 바다가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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