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가득 찼다. 냉동고도 마찬가지다. 미처 소비하지 못한 산딸기와 라즈베리 탓이다. 이제는 비워야 넣을 수 있다. 꽁꽁 언 불고기감과 치아바타를 꺼낸다. 시금치는 마늘과 올리브유에 볶고 치아바타는 반으로 갈라 얼마 전에 만든 바질 페스토를 바른다. 시금치를 얹고 불고기도 바싹 볶아서 올린다. 치즈를 쌓아 올려 오븐에 굽는다. 빵을 반으로 갈랐으니 두 개가 나온다. 딱 좋다. 상추에 양파와 깻잎, 빨간 무를 넣고 고춧가루와 간장, 깨소금, 매실청을 조금만 넣어 버무린 상추겉절이를 곁들인다. 나야 물론 엄마가 만든 알감자 조림이 먹고 싶다. 쫄깃하고 반짝거리는 그것을.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어야 해서 다행이다. 매일 세탁물이 쌓이고, 쓰레기가 나와서 고맙다. 드문드문 약속이 생기고 명절과 제사가 있어서, 챙겨야 할 대소사가 있어서 숨통이 트인다. 그런 것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내 안에 갇혀서 필시 터져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