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하늘이 내려앉고 천둥이 울며 눈발이 흩날렸다. 어둠이 내리려면 몇 시간 더 있어야 할 시각에 갑자기 밤이 되었다. 크고 작은 눈송이가 우박과 섞여서 내렸다. 얼마나 급했으면 미처 눈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가. 사랑을 빼앗긴 여자처럼 눈은 울었다. 요란했으나 허망한 눈이었다. 눈은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렸고 천둥소리는 유리창도 흔들지 못했다. 슬픈 건 눈이 쌓이지 못하고 천둥소리에 겁을 내는 이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겨울은 오는 봄에게 이기지 못하는 법이니까. 이미 돌아앉은 마음을 돌리기에는 시간이 없고, 떠나야 할 시간은 이미 지난 데다가, 남아 있는 이들은 내일이면 잊을 것이라서, 떠난 자리에 금방 새 웃음이 자리 잡을 걸 알면서도 돌아서지 못하고 기어이 부려보는 앙탈. 마당에서 눈과 우박 세례를 받은 동백 이파리에 구멍이 난 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