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스티븐스는 천생 집사다. 평생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자 애썼고, 최고의 집사가 되기를 꿈꾸었으며, 집사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저해하는 모든 일과 담을 쌓으며 살았다. 그가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달링턴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총무 캔턴양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소설은 그 일주일을 담고 있다. 혹여라도 그녀를 다시 달링턴홀로 불러들일 수 있을까 해서 계획한 여행이었지만 그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음은 금방 드러난다. 책은 내내 변명이고 합리화인데 특이한 점은 그의 변명이 다른 누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해진 것이라는 것, 스스로에게 자신을, 자신의 행동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데 있다.
집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외면했던 스티븐스다. 주인이었던 달링턴 나리가 독일의 재무장을 돕기 위해 국제적 모임을 주선하는 동안 그 회의를 완벽하게 치러내기 위해, 즉 집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아버지의 임종마저 놓친 그다. 이제 독일의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달링턴 나리의 과오가 밝혀졌음에도 자신이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자기는 집사이므로, 주인의 판단을 따를 뿐이며 바로 그것이 집사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캔턴양이 달링턴홀을 떠난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도 전직 동료로서의 범주에서 벗어나 그녀를 생각할 수 없다. 너무 얇아서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커튼 한 장으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사실, 그와 캔턴양이 서로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외면하는 것이다.
넷째 날 스티븐스는 캔턴양을 만나지만 캔턴양을 달링턴홀로 돌아오게 하는 데는 실패한다. 캔턴양은 총무로서 자질도 있고 능력도 뛰어났지만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티븐스와 다르다. 스티븐스의 앞에서 닫혀버린 문 안에서 눈물을 흘렸던 그녀는 외면당한 꽃다발을 거두고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에게로 가서 벤부인이 되었다. 그녀가 스티븐스보다 용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하고 자책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중략)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남아있는 나날]중에서
여섯째 날 저녁에 바닷가 마을에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스티븐스가 하는 생각은 달링턴홀의 새로운 주인 페러데이 어르신을 위해 농담과 재치를 더욱 연마해야겠다는 것, 바로 집사의 본분 그리고 능력이다.
아름다운 바닷가의 석양과 불빛을 바로 앞에 두고 있었으면서도 저녁의 휴식은 스티븐스의 몫이 아니었다. 겁이 많은 사람은 변명도 많다. 나치에 협력한 주인을 모신 것, 만찬 시중을 들고 손님의 부어오른 발을 돌보느라 부친의 임종을 놓친 것, 사랑하는 여인을 외면한 것 - 그 모두를 인정한다는 건 스티븐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 될 터였으니 그는 다시금 외면하고 만다. 잘못 살아왔다는 걸 인정하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나의 스티븐스는 그 질문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한 단계 내려서서 집사로서 주인의 농담을 어떻게 재치 있게 받아줄 것인가에 관해 골몰히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