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귀에 식당이 생겼다. 가게 이름이 <짬뽕 살롱>이다. 신축 빌라의 일층 절반을 차지한 그 가게는 특이하게도 외벽과 문틀, 간판까지 모두 검은색이라 붉은색으로 쓰인 <짬뽕 살롱>이란 상호가 한층 도드라져 보였다. 여름비가 그친 마당에 갑자기 솟아난 노란 버섯처럼 생경했다. 아마도 짬뽕이 주 메뉴일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가게 앞은 한결같이 한산해서 오히려 궁금했다. 새로 문을 여는 여느 가게들이 으레 걸기 마련인 현수막도, 간판 한쪽에 적혀있기 마련인 메뉴도 없었다. 가게 앞에 배달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을 때도 없었다. 우리는 그 가게를 지날 때마다 저렇게 간단명료한 간판이 있나? 새로 문을 연 식당의 대표메뉴가 짬뽕인가? 아니면 짬뽕만 먹을 수 있는 식당인가? 혹시 짜장면을 주문하면 쫓겨나는 건 아닐까? 시시한 소리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그곳을 지날 때가 주로 낮이었기 때문인지 가게 문은 항상 닫혀있었고 유리문 안쪽으로 불이 켜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초여름에 접어든 어느 날, 지나는 길에 무심코 짬뽕살롱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탄성을 질렀다. 짬뽕 살롱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콩국수 개시! 100% 국산 콩을 맷돌로 직접 갈아 만듭니다.”
하얀 현수막이 간판 전체를 뒤덮고 펄럭이고 있었다. 진짜 가게였어! 짬뽕 살롱의 주인은 간판만 걸어놓고 굳게 닫힌 검은 문 안에서 엉뚱한 일을 하는 의뭉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시절에 맞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데다가 추가된 메뉴를 알리는 현수막을 거는 현실감각까지 지닌 사람이었다.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국산 콩을 맷돌에 직접 갈아 만든다지 않는가.
우리동네 짬뽕 살롱
콩국수는 내게 여름이 오기만 하면 도지는 계절병이었다. ‘콩국수 개시’라고 쓰인 포렴을 건 가게를 지날 때마다 시험에 드는 기분이었다. 콩국수가 가진 모든 게 좋았다. 넉넉한 크기의 면기와 매끄러운 국수, 하얀 콩물을 배경으로 도드라진 계란의 노란색까지, 입안에서 느껴지는 매끄러움과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는 서늘함, 그리고 유년의 여름. 내게 콩국수란 단어는 국수 한 그릇을 넘어선 그리움이었다. 엄마가 콩을 삶아서 맷돌에 갈고 거른 콩물은 은은하게 옥빛이 났다. 고운 베주머니에 거른 콩물이 매끈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눈에 들어온 하늘은 또 얼마나 푸르렀는지, 짬뽕살롱 앞에서 펄럭이던 현수막을 보는 순간 잠자던 갈망이 다시 깨어났다. 그러니 언덕을 올라 집으로 향하는 동안 갑자기 내 안에서 생겨난 생각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는가.
‘나도 콩국수를 한 번 만들어볼까?’
콩국수라면 어렸을 때 엄마 옆에서 무던히도 봐왔던 음식이 아닌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만으로도 콩물 정도는 너끈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치 냉장고 서랍에 넣어둔 잡곡 주머니들 틈에는 언젠가 콩나물을 길러보려고 샀던 쥐눈이콩이 분명 있을 터였다. 콩을 불리고, 삶고, 껍질을 벗긴 후, 갈아서 베보자기에 짤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콩을 불렸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였다. 불린 콩을 삶고 손으로 주물러 콩 껍질을 벗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어쩌자고 콩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걸까? 아니 엄마는 왜 집에서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을까? 몰랐으면, 기억에 없었으면 이런 일도 벌이지 않았을 거 아니냐고 혼자 중얼거리며 실랑이를 했다.
콩 삶아서 껍질 벗기기
엄마는 커다란 함지박에 가득 콩을 불렸다. 맷돌을 앉힌 함지는 툇마루에 놓았다. 엄마와 마주 보고 앉은 내가 맷돌 위짝 구멍에 콩을 떠 넣으면 엄마가 손잡이를 돌렸다. 맷돌 사이로 갈린 콩이 미어져 나왔다. 내가 쥔 국자는 터무니없이 작아서 아무리 콩을 떠 넣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맷돌질을 마치면 엄마가 갈린 콩을 베주머니에 담아 주물렀다. 진하고 뽀얀 콩물이 나왔다. 콩물을 다 거르고 난 후에도 엄마는 맷돌 위짝을 들어 올려 콩 주머니 위에 얹었다. 콩물 한 방울도 엄마에게서 도망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만든 콩국수를 먹는 날에는 항상 손님들이 있었다. 대문을 열어놓고 살던 시절이라 이웃들이 무시로 드나들었다. 엄마가 콩을 삶거나 맷돌을 돌릴 때 집 앞을 지나던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점심 초대를 받았다. 평상에 놓인 서너 개의 밥상마다 주인이 있었다. 그때 엄마는 참 젊었다.
매일 끼니 걱정을 한다. 날이 갈수록 음식 만들기에 진심을 다하는 대신 요령만 찾는다. 매일 먹는 밥, 대충 때워도 되지 않을까 꾀를 부리다가 지레 지쳐버리기 일쑤다. 간혹 엄마 집에 가면 먹는 게 이렇게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는 일인지 새삼 놀란다. 이른 아침 부엌을 가득 채우는 된장국 냄새에서 시작해 나무도마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 삶은 나물을 얹어놓은 채반의 모양새, 엎어놓은 그릇 위에 떨어지는 오후의 햇살까지 맛으로 가득하다. 엄마의 맛은 비어있는 주방에서도 느껴질 만큼 단단하고 촘촘하다. 맛의 기억이 허기와 함께 마음까지 달랜다. 그래서일까. 엄마 집에 다녀오면 다짐이 생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싱크대 물기를 한 번 더 닦고 비어있는 양념 통을 채운다. 비어있는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연필을 깎는다.
처음 만들어 본 콩국수
느닷없이 콩국수를 만들어보겠다고 부산을 떤 그날, 작은 종지에 찰랑거릴 정도로 콩물을 따라 마셨다. 소금 한 꼬집을 넣어 녹인 후 천천히 삼켰다. 입안을 조심조심 살피며. 거기 어디에 엄마의 맛이 숨어있는 것처럼. 콩물을 마시느라 젖혀진 고개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여느 때처럼 짬뽕살롱을 지나다가 가게 유리에 큼지막한 노란 종이 한 장이 붙어있는 걸 보았다. 평소처럼 그대로 지나치는 대신 가게 앞에 섰다. 주방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면을 뽑는 기계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 수술을 했고 입원 중이라는, 오픈 전에 다시 공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쓴 아내는 짬뽕살롱의 주인이자 주방장이었던 남편이 최고는 아니지만 음식에는 진심이었다고,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잊지 말고 다시 찾아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식당이었다. 가게 문이 여닫히는 걸 본 적도 없고,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 적도 없었다. 나로서는 장난스러운 호기심이 반, 저렇게 한가해서야 가게가 제대로 운영이 될까 걱정 반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주방 일손을 구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곁에서 지켜보기에 아슬아슬했다고도 했다. 병원에 누워있는 이와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은 창백한 노란색일까.
외출할 때마다 짬뽕살롱을 지나다녔다. 남편과 나는 가끔 서로에게 묻곤 했다. 손가락은 괜찮을까? 다시 문을 열었을까? 알 수 없었다. 유리문에 붙어있던 노란 도화지도 사라졌다. 계절이 바뀌었다. 짬뽕살롱 앞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차들이 몇 대나 서 있기도 했고 가끔 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어두워진 후에 귀가하는 날이면 불이 켜진 실내가 붉게 빛났다. 음식에 진심인 요리사가 돌아왔나 보다 짐작했다. 가게 앞이 붐비는 것처럼 보이는 날에는 우리도 언제 한 번 가보자며 즐겁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차츰 호기심도 기대도 줄어들어 이제 짬뽕살롱은 우리에게 동네의 고만고만한 식당 중 하나가 되었다.
비가 그쳐 습한 바람이 부는 어느 저녁,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때였다. 어스름한 시간, 낮의 열기가 조금씩 사그라드는 걸 느끼며 언덕을 오르는데 조금 앞에서 걸으며 전화를 하던 남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익숙한 단어 하나가 귀로 들어왔다.
“그래, 내일 저녁때 짬뽕살롱으로 와라.”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음식에 진심인 주인이 만든 짬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잰걸음이 느려지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올여름 엄마는 콩국수를 드셨을까. 엄마와 마주 앉아 콩국수를 기다려볼까. 큼지막한 국수그릇을 기울여 뽀얀 콩물을 입안으로 흘려 넣는 상상을 했다. 온몸 구석구석 맛있는 기운이 퍼졌다. 집에 가서 늦은 저녁 준비를 할 생각에 움츠러들었던 가슴도 펴졌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