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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Sep 20. 2023

글쓰기는 쉬운 재주가 아니다

메모는 메모일 뿐

    오래전에 들고 다녔던 가방을 정리하다가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영수증들, 잡지에서 뜯어낸 낱장들, 식당의 냅킨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오래된 영수증은 잉크가 흐릿하게 변해서 언제 어디에서 받은 것인지도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여백과 뒷면에는 아직도 선명한 글자들이 빼곡했다. 급하게 휘갈겨 쓴 것들이라 생경한 문장들은 책을 읽다가 옮겨 적은 글이거나 짧은 독후감, 낙서 같은 것들로 맥락을 알기는 어려웠지만 짧고 격렬한 문장들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글의 첫 줄 같아 보이는, 부풀어 오른 단어들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기세의 시작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낡은 가방 속에 들어있던 메모들을 읽는 것은 지난 시절의 나를 만나는 일과 같았다. 걷고 마시고 먹고 운전하던 중에 느닷없이 찾아왔던 ‘시작’과 ‘처음’들은 가방에서 꺼내지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읽다 말고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처럼 맴을 돌았다. 도대체 이것들이 다 뭐람!     


   물론 가방 속의 오래된 메모만은 아니다. 손바닥만 한 수첩과 핸드폰 속 메모장에도 두서없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영감은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다음 순간 바로 사라지므로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다. 그 자리에서 바로 잡아채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설거지를 하고 있거나 요리를 할 때, 먹고 씻는 순간에는 더욱 낭패다. 거품 묻은 손을 헹구는 사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 버린 단어와 문장들! 잊지 않으려고 중얼중얼 외우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흔적도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한꺼번에 달려드는 데 그걸 당해낼 재간이 없다. 메모는 금방 떨어진 꽃잎 같다. 그대로 놔두면 곧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메모는 메모일 뿐이란 뼈아픈 가르침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썼다.


   메모를 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다시 말해 항상 선택을 해야 하니까. 나는 너무 졸려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절대로 쉬운 재주가 아니다. 무엇을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는 쉬워 보이지만, 그 생각은 증발해서 여기저기로 날아가 버린다(1933. 5.13 일기).

 

   버지니아 울프가 글쓰기의 어려움을 고백한 건 일기에서만이 아니다. [등대로]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릴리 브리스코는 화가다. 릴리는 십여 년 동안이나 계속 램지 부인을 그리는 중이다. 그동안 램지부인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기억에 의존해서 그리고 있다. 비록 화가라고 해도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아서 붓을 손에 들기만 하면 온통 달라져 버렸다. 풍경에서 화폭으로 눈을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머릿속의 구상을 작품으로 옮기는 일은 두려운 일이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하지만 이게 내가 보는 거야. 이게 내가 보는 거야”라고 되뇌는 것뿐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44살에 [등대로]를 썼다. 작품 속에서 릴리 브리스코 역시 44살이다. 릴리가 그리는 건 램지 부인이고 램지 부인은 울프가 자신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인물이므로 릴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바로 울프 자신의 어려움이었다.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란 의구심,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서의 어머니가 아니라 실재했던 어머니 그대로를 그려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릴리의 입을 빌어 거듭 되풀이된다. 눈으로 본 것을 쓰거나 그리는 일의 어려움을 버지니아 울프가 몰랐을 리 없다.


   마흔네 살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그녀는 생각했다. 자기가 그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싫었다. 이 파괴와 혼돈과 투쟁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것이 붓인데, 붓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등대로] 중에서


   아무리 어려워도 릴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곧 버지니아 울프의 마음이기도 했다. 의도만큼 정확히 담아내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시시한 그림 혹은 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해도 시간이 지난 뒤에 그걸 볼 때마다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또 쓰고 싶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릴리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한다. 다락방에 걸리든 없애 버리든. 그리고는 붓을 들고 한복판에 선을 그어 그림을 완성한다.


“바로 이거야.”


  그렇다면 나 역시 쓸 수 있을 것이다. 불쑥 솟아오르는 의문, 오래된 농담과 오해, 내밀한 기쁨들을 정확하게 언어로 옮기지 못한다 해도 낙담할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내 안의 악마가 언제나처럼 ‘어차피 무엇이 진실인지 아는 사람은 없으니 공연히 말을 해서 망쳐버리는 대신 침묵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속삭이더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글 속에 담긴 마음을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알아볼 수 있게 드러내는 것, 버지니아 울프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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