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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을 하는 나이

by 라문숙

무엇이든 처음이었던 때가 있었다. 처음으로 꽃다발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톨스토이를 읽었을 때,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탔을 때, 처음으로 편지를 받았을 때, 첫 월급을 받고 첫 쇼핑을 했을 때, 처음으로 빵을 구웠을 때, 처음으로 아이를 안았을 때, 첫 책이 나왔을 때. 요즘은 처음이 귀해졌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먹든 날것의 생소함보다 익숙함이 먼저다. 여러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예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고, 묵은 편지들을 꺼내본다. 푸릇한 채소들의 쌉쌀함보다 오래 묵은 장아찌의 나른함이 편안한 밥상머리에 앉은 것 같다. '그때는 그랬는데, 예전에는 말이지, 엄마가 학교에 다닐 때는' 이란 말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끝도 없이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처음'보다는 '다시'가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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