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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날개만 가진 사람

by 라문숙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다시 읽다가 '모리 오가이'의 글이 궁금해졌다. 안데르센의 [즉흥시인]이 모리 오가이의 번역으로 소개되었는데 그 번역이 아름답고 빼어나 작가의 아버지가 딸의 ‘일본어가 빈약해질까 우려해서 틈날 때마다 읽기'를 권했다는 장면 때문이었다(오래전 나 역시 [즉흥 시인]에 사로집힌 시절이 있었는데 친구 중 이 작품을 읽은 이가 없어 외로웠던 기억이 있는 터라 한층 더 그랬다). 책장을 뒤져 한 편의 글을 찾아냈다. 수필집 [슬픈 인간] 에서 발견한 <사프란>이란 제목의 짧은 글이었다. '한쪽 날개만 가진 사람'이란 문구 아래에 밑줄까지 그어놓은 걸 발견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가다가 그 부분에서 다시 멈췄다. 글자 몇 자에 붙들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걸까? 세계가 손안에 들어올 것처럼 축소되고 창밖의 숲이 순식간에 아득하게 멀어진다. 나 말고도 어딘가에 한쪽 날개만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린다. 이런 순간들이 우리를 끝없는 읽기로 몰아넣는 것일까?


책을 좋아해서 서서히 책에 탐닉하면서 그릇에 때가 끼듯 다양한 사물의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이름은 익혔지만 사물을 몰라서 한쪽 날개만 가진 사람이 됐다. 거의 모든 사물의 이름이 그랬다. 식물 이름도 마찬가지다.
모리 오가이, <사프란> 중에서


밑줄을 그었을 때가 언제였든 이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궁금하고 갖고 싶은 것들은 내 손에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가까이 있는 것 대신 먼 데 있는 것을 꿈꿨다. 현실보다 책 속의 세계에서 더 행복했던 아이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책에서 읽은 것들, 새로 알게 된 또 다른 책들, 꽃과 나무들의 이름, 향신료와 오일들, 오건디와 플란넬 같은 직물들의 이름까지 보물처럼 간직했던 아이가 아직도 내 속에 남아 있으니 한쪽 날개만 가진 사람이란 문구가 데인 듯 뜨거웠다. 하긴 무엇이든 그랬다. 가보지 못한 곳,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나는 글자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방문하고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한쪽 날개만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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