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중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문숙 Dec 07. 2023

친구의 유산


    오랫동안 마당에 나가지 않았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등을 돌린 지도 제법 되었으니 햇볕과 곤충들 탓은 아니었다. 내가 겁을 냈던 건 여전할 꽃과 나무들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무심할 식물들 앞에서 파도처럼 밀려올 허허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볕이 부드러워지고 바람이 순하게 내려앉던 며칠 전에서야 겨우 나가서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콩잎은 누렇게 물이 들고 토마토 덩굴은 노란 열매 몇 개를 단 채 말라비틀어져가고 있었다. 장마 전에 흐드러졌던 분꽃들이 스러진 자리에 새싹이 다시 돋아났다. 마른 가지들을 걷어내다가 시든 줄기가 엉켜 누더기처럼 변해버린 채송화를 발견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아픔이 몸을 휘저으며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쇄골 위쪽이 죄어드는 느낌에 숨이 막혔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채송화 씨앗 조금만 받아줄 수 있어?”


   작년 여름,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한창이던 날, 마당을 둘러보다가 한 무더기 채송화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알록달록한 채송화 꽃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투병 중인 친구에게 보냈을 때 받은 문자였다. 이듬해 친정 마당에서 채송화가 핀 걸 보고 싶다고 했다. 필요한 게 있느냐 물을 때마다 이미 충분하다고 손사래를 치던 친구에게 원하는 게 생겼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줘야 했다. 가장 실한 씨앗 한 줌, 그 여름 내 마음은 채송화 씨앗으로 가득 찼다.


   매일 나가서 채송화를 살폈다. 꽃이 시든 자리에 초록색 씨방이 생겼다. 채송화가 그렇게 물기가 많은 식물인 걸 처음 알았다. 시들어가는 채송화 앞에서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일 외에는 없었다. 자줏빛 줄기와 회녹색 이파리가 쪼그라들며 씨방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한 건 초가을, 씨앗을 모으던 날은 거짓말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검게 반짝이는 씨앗을 친구에게 건넬 때 마주 앉은 우리가 웃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친구가 말기 암이란 소식을 전해온 건 지난해 봄이었다. 수술을 했고 요양원과 응급실을 오가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날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산책 나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데 뛸 수가 없어 그냥 걸어왔어, 우산이 없어서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느릿느릿 걸어오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더라고. 그런데 신기하지. 이렇게라도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네.’


   씨앗이 여물길 기다리던 내 앞에 먼저 나타난 건 반짝거리는 씨앗이 아니라 시들어 추레해진 채송화였다. 씨앗이 잘 여물기 위해서는 식물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채송화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쪼그라졌지만 죽지는 않았다. 씨앗이 영글 때까지 살아있어야 한다는 걸 꽃도 알았던 걸까? 씨앗을 털어내고 말라비틀어진 채송화를 뽑았을 때 나는 경악했다. 뿌리가 삭아서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몸으로 잘도 버텼구나 싶었다. 생명이 다할 때의 모습은 식물과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과 부어오른 발목을 동시에 가졌던 친구의 몸이 생각났다. 건강했을 때의 웃음, 목소리, 손짓과 표정을 떠올리며 마당을 둘러보다가 맞닥뜨린 작은 빛 한 무더기, 마른 흙 위에 쏟아진 채송화 씨앗이 친구의 웃음소리같았다. 뿌리를 잃어가면서도 씨앗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던 채송화에서 뛸 수 없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더라도 오래오래 살고 싶다던 친구가 보였다. 삶에 대한 열망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그득하게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친구가 남긴 씨앗은 삶에 대한 진심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묵묵히 기다리고 뒤를 돌아보며 자리를 내어주는 건 친구가 잘하는 일이었다. 서둘러 가느라 미처 나누어주지 못한 너그러움이 채송화 씨앗에 담겨 내게 전해졌다.


  오래 살고 싶다던 친구는 올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물기가 어려 흐릿했던 시야가 걷히면서 시든 채송화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미처 영글지 않아 연둣빛인 것, 붉게 반짝이는 것, 고깔을 벗어버리고 씨앗을 가득 담고 있는 것, 어느새 씨방을 털어버린 것들이 난장을 이루고 있었다. 바짝 말라버린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채송화 사이에서 철 모르고 나온 새싹이 보였다. 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마당이 빛으로 가득 찼다.




종합문예지 [생명과 문학] 2023 겨울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에 기대어 또 한 해를 살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