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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an 19. 2024

나만의 방

밤과 낮


    침대를 일인용으로 바꿨다. 남편은 몇 달 전부터 맞은편 방에서 고양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그 방에서 계속 지낼 거냐고 물었더니 그러마고 한다. 침대를 작은 것으로 바꾸고 덤으로 얻은 공간에 작은 책상을 들여놓았다. 이제는 여행이라도 가지 않는 한 남편과 내가 같은 방에서 잘 일은 없을 것이다. 자다가 헛소리나 잠꼬대를 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옆에서 잠든 남편이 혹시 깰까 봐 스탠드 불빛을 신경 쓰며 숨죽이고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잠들고 싶지 않으면 언제 까지든 깨어 있을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두 번째 장편소설 [밤과 낮]의 메리는 시골 소교구 목사의 딸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대학을 다닌 후 스트랜드 거리 근처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캐서린이 메리를 부러워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메리가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산다는 것. 캐서린이 메리의 방을 처음 방문한 날에 둘이 나눈 대화가 인상적이다.    

 

“난 당신도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캐서린이 말했다.
“왜요?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당신이 이 방에서 혼자 살고 또 이렇게 파티를 열고 하는 걸 보고 한 말이에요.”
“그건 자기 가족에게 싫은 일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봐요. 난 아마도 그런 능력이 있는 모양이에요. 집에서 살기가 싫어서 아버지께 말씀드렸거든요. 물론 좋아하시진 않았지만… 하지만 집에는 언니가 있으니까요. 당신은 동기간이 있나요?”                                           
                                                                                                        [밤과 낮]중에서     


   자신만의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캐서린과 달리 메리는 가족에게 싫은 일을 하고 집을 떠난 사람이다. 그걸 메리는 ‘능력’이라고 부른다. 메리가 떠나온 시골집에서는 언니가 아버지와 형제들을 보살피며 살고 있다. 그러니 메리의 언니는 <집안의 천사>인 셈이다.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라 자신을 돌아볼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다. 언니와 달리 메리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겠다는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았지만 해낼 수 있었다. 메리의 말마따나 그건 ‘능력‘이었다.  

   

    꼭 해야 할 일만 겨우 하는데도 하루가 꽉 차고, 일상의 어려움 같은 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보다는 억울해하는 때가 많으며, 내 마음이 가장 소중하고 이루고 싶은 소망도 많아서 다른 사람들의 그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는 없는, 그것만으로도 지쳐서 저녁이면 눈 밑에 그늘이 생겨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며, 하는 일도 없이 왜 그러느냐고 핀잔을 받아도 그럴듯하게 반박할 말도 못 찾을 게 분명한 나는 어떨까?

  

   처음으로 방을 혼자 차지했던 건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다.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마주 보는 방이었다. 서향이라 여름이면 밤까지 열기가 가시지 않았고 겨울이면 웃풍이 심해 입김이 보일 정도로 추웠지만 나는 그 방이 좋았다. 밤이 깊으면 그만 자라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전등에 의지해 책을 읽곤 했다. 가끔은 책장의 책을 모조리 꺼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꽂고, 보자기를 뒤집어쓰거나 어깨에 두르고 거울을 관객 삼아 혼자 패션쇼를 하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는커녕 '자기만의 방‘이라는 문구를 떠올리지도 못했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밤에 춥고 좁았던 그 방은 온전한 나만의 방이었다.


   그러나 '자기만의 방‘을 가졌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혼자 연극을 하고 패션쇼를 하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이 들었던 그 방은 손님이라도 오면 바로 내주거나 함께 써야 했다. 내 방이면서 모두의 방이었던 셈이다. 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때도 그런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내가 학교에 가거나 주말에 집에 다니러 간 동안은 하숙집 딸이 그 방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짧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지내던 방 역시 집주인들이 무시로 드나들어 나는 언제나 조금씩 긴장한 상태였던 것 같다. 결혼을 한 후에는 내 방 보다 우리 방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가끔 집을 갖고 싶었다. 며칠씩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계 없는 집을 상상 속에서 짓고 허물었다. 그동안 내가 머물던 방들을 생각하니 내가 정말로 갖고 싶었던 건 물성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집이 표상하는 어떤 것, 이를테면 가끔 세상에서 숨어버리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메리는 <참정권 운동>을 하는 협회의 사무실에서 일한다. 그녀의 방에서는 젊은이들이 모여 시를 낭독하거나 새로 발표된 논문들에 대해 토론을 한다. 메리는 자부심을 가진 어조로 자기들은 ‘예술을 논한다고’ 중얼거리곤 하는데 캐서린은 그런 방을 가진 메리를 부러워한다. 메리 본인도 자신의 방을 뿌듯하게 여긴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햇빛이 가득 찬 방을 둘러보며 행복하다. 돌아올 때까지 자기가 놓아둔 그대로일 모든 것을 두고 나가는 것이 기쁘다. 그 기쁨이 오로지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에게 일이 있다는 사실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는 메리는 바로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1919년 5월에 버지니아 울프는 행복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일(work) 일 것이라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자기만의 방>은 이때부터 메타포가 된다.   

   

   이제 방에 들어와 문을 닫으면 집안의 다른 장소들과, 그러니까 세상과 차단된다. 마치 레인지후드를 끄는 순간처럼 고요하다. 북엇국을 끓이고 두부를 졸이는 동안 깨닫지 못했던 소음을 레인지후드의 팬이 정지한 순간 찾아온 정적 속에서 실감하는 것처럼. 문을 닫을 때마다 지친 몸을 누이는 기쁨과 평온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문을 닫는 것만으로 세계를 분리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가끔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아 슬펐던 때가 있었지만 놀랍게도 지금은 그 사실이 반갑다. 나이 든 여자는 시선을 끌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늙음이 자유를 가져온다는 이치도 덤으로 알았다. 다시 소녀가 되는 대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동하기도 한다.  

    

   나는 방에서 홀로 창밖을 바라보고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껏 세상을 무시하며 살 수 있다. 밖의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들이 이곳에서는 가능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시간을 편으로 삼으면 된다.  내 앞에 새롭게 나타난 것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천천히 살펴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빠져들면 되겠지. 이 방에서 조금씩 할머니가 되어가는 일도 그렇게 다가올 멋진 일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 나이를 살아보지 못한 이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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