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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l 22. 2024

일기

어느 작가의 일기

   1940년 9월 14일, 독일군의 폭탄이 런던의 버지니아와 레너드 울프의 집 근처에서 터졌다. 10월 20일에  버지니아울프는 일기에 썼다. "나는 일기를 찾기 시작했다. 이 작은 차로 얼마나 실어 나를 수 있을까?" 이틀 후에 그녀는 "24권의 일기가 살아났다. 회고록을 위한 충분한 양"이라고 언급했다. 1941년 3월에 버지니아 울프가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을 때, "과거의 스케치"와 그 이전에 썼던 몇몇 에세이들 외에 그녀의 회고록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채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1941년에 세상을 떠난 후, 1953년에 레너드는 회수된 공책들(및 울프의 런던 집에 없었던 것들) 중에서 일부를 선택해 [어느 작가의 일기]을 출간했다. 울프는 33살이 되던 1915년부터 1941년 까지 계속 일기를 썼는데 마지막 일기를 썼을 때는 죽기 나흘 전이었다. 울프는 좋아하는 종이를 사서 공책으로 제본했고, 일기나 소설을 모두 이런 종류의 공책에 썼다. 울프는 세상을 떠났을 때 직접 쓴 스물여섯 권의 일기를 남겼다.  


  레너드가 [어느 작가의 일기]를 출간할 때 직접 쓴 서문에 의하면 애초에 버지니아의 일기 전부를 출판하지 않은 이유는 "그 일기장에 사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일기 안에 언급된 많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그 전체를 출판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울프의 문필활동과 관련된 부분을 거의 모두 추려 내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 것은 울프가 얼마나 "비범한 정력과 끈기와 집중력으로 글 쓰는 일에 헌신했는지, 또 얼마나 한결같이 성실하게 책들을 쓰고, 고치고, 또 고쳐 썼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스스로 밝힌 '일기를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일기는 훗날 회고록 작가가 되어있을 "늙은 버지니아"의 기록 보관소였고 울프의 소설 속 장면, 문구 및 등장인물에 관한 기록 보관소이기도 했다. 일기는 글쓰기 과정에 대한 기록이었으며 친구, 가족, 하인, 평론가들과 관련된 긴장감을 표현하고 완화하는 ("따라서 객관화되어 고통과 수치심이 한 번에 훨씬 줄어든다") 자기 치료이기도 했다.


  내 일기가 어떤 모양이기를 바라는가? 짜임새는 좀 느슨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떠올라오는 어떤 장엄한 것이나, 사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 감쌀 만큼 탄력성이 있는 어떤 것. 고색창연한 깊숙한 책상이나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쓰레기 같은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도 던져 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한두 해 지난 뒤 돌아와 보았을 때, 그 안에 들어있던 것들이 저절로 정돈이 되고, 세련되고, 융합이 되어 주형으로 녹아있는 것을 보고 싶다.                                                                                                     1919년 4월 20일 일기


  글을 쓰고 있으면 우울증이 좀 가신다. 그렇다면 왜 좀 더 글을 자주 쓰지 않는가? 아마도 허영심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나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없다는 것,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 글을 잘 쓸 수 없다는 것, 먹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 늙어 간다는 것 등이다. 나는 "왜"나 "무엇 때문에"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           
                                                                                             1920년 10월 25일 일기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페이지마다 인간의 다양한 경험과 그에 걸맞은 언어적 에너지로 진동한다.   


  1921년 8월 13일, 여권 운동가였던 칼라일 부인이 죽었을 때는, "사람들은 남이 승리에 취해 의기양양할 때보다 엄청난 불행을 만나 어쩔 줄을 몰라할 때를 더 좋아한다. 그녀는 큰 희망과 많은 재능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기면성 뇌염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들 다섯을 앞세우고, 인류에 대한 자신의 희망은 으깨진 채."라고 썼다.


  1933년 5월 유럽 여행 중에 마주쳤던 프랑스 여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 글은 마치 한 장의 그림을 보는 것과도 같다, "식당의 한 테이블에서 매우 가늘고 윤이 나는 명주실로 수를 놓고 있던 여인의 얼굴. 그 여인은 숙명과도 같았다. 자기 보존술을 완전히 몸에 지닌 여인. 머리는 말아 올렸고, 윤기가 났다. 눈은 무심한 표정이어서, 아무것도 그녀를 놀라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줄곧 사람들이 오가는 데서 녹색 명주실로 수를 놓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러면서 뭐든지 알고 있고,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완벽한 프랑스의 부르주아 부인."


  1934년 10월, 로저 프라이가 죽었을 때, "로저의 죽음은 리튼의 죽음보다 더 힘들다. 왜 그럴까, 궁금해진다. 텅 빈 벽. 이 침묵. 이 피폐. 그처럼 그의 울림이 컸던 것을!"


  울프는 그녀의 일기가 사적인 것으로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우즈강으로 향하던 날, 레너드에게 남긴 편지의 뒷면에 자신이 쓴 모든 것들을 파기해 달라고 썼지만 아마도 그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을 것이다. 1926년에 그녀는 썼다. "이 많은 일기는 어떻게 되는 건가,라고 어제 자문해 보았다. 내가 죽는다면 레오가 이것을 어떻게 할까? 불태워 버리기는 싫어할 것이고, 출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글쎄, 이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고, 나머지는 태워 버리면 된다." 15년 후 버지니아 울프는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12년 후에 레너드는 버지니아의 말대로 한 권의 일기를 출간했다. 소설을 쓸 때마다 고치고 또 고치면서 망설이고 두려워했던 버지니아 울프로서는 스스로 검열하지 않은 책의 출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동시에 레너드에 대한 신뢰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현실과 언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 사람과 저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그녀가 종종 사용하는 은유의 언어들이다.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상상하여 묘사하는 그녀의 글쓰기 스타일이 너무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어느 작가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레너드가 포함시키지 않은 날짜의 일기들이 점점 궁금해진다. 서섹스 지방의 아름다움을, 8월 마지막 날의 노을을, 홍수로 물에 잠겨버린 우즈강 주변을 이야기할 때마다 덩달아 황홀해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고, 나는 그녀를 따라 달리고.



  

  물론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일기 전체의 출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언제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조카인 쿠엔틴 벨과 결혼한  미술사학자 앤 올리비에(Anne Olivier,1916~2018)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약탈된 예술품을 본국으로 반환하는 임무를 맡았던 모뉴먼츠 우먼(Monuments Woman)이었던 그녀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일기를 읽었고, 다음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읽었는데 그건 엄청난 노동이었다. 앤드류 맥닐리(Andrew McNeillie)의 도움으로 그녀는 2,317 페이지의 손으로 쓴 노트 30권을 기록하고 주석을 달았다. 버지니아 울프가 1915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보관했고, 1969년 레너드가 세상을 떠난 이후 뉴욕 공공도서관이 소장해 온 이 일기들은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앤에 의해 5권으로 발간되었다.*



*마지막 문단은 2021년 버지니아 울프와 시(Virginia Wolf and Poetry)를 출간한 에밀리 코피(Emily Kopley)가 TLS(Times Literary Supplement) 2023년 12월에 기고한 글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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