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일기
내 일기가 어떤 모양이기를 바라는가? 짜임새는 좀 느슨하지만 지저분하지는 않고, 머릿속에 떠올라오는 어떤 장엄한 것이나, 사소한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라도 다 감쌀 만큼 탄력성이 있는 어떤 것. 고색창연한 깊숙한 책상이나 넉넉한 가방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허섭쓰레기 같은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도 던져 넣을 수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란다, 한두 해 지난 뒤 돌아와 보았을 때, 그 안에 들어있던 것들이 저절로 정돈이 되고, 세련되고, 융합이 되어 주형으로 녹아있는 것을 보고 싶다. 1919년 4월 20일 일기
글을 쓰고 있으면 우울증이 좀 가신다. 그렇다면 왜 좀 더 글을 자주 쓰지 않는가? 아마도 허영심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나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없다는 것,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 글을 잘 쓸 수 없다는 것, 먹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 늙어 간다는 것 등이다. 나는 "왜"나 "무엇 때문에"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
1920년 10월 25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