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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ul 29. 2024

숨은 그림 찾기

소설 속에 등장한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것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로로 가득한 도시를 걷는 것과 같다. 어느 골목 입구에 서면 어머니의 환영이 보이고, 아득한 오르막 길 끝에는 아버지가 서있는 식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만나는 과거의 환영들 중에는 그리운 이들뿐만 아니라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버지니아울프는 그들을 위해 작품 속에 자리를 마련했다. 애정을 담아 되살리거나 조롱 섞인 인물로 희화화하기도 했는데 그건 물론 작가였으니까 가능했던 찬양 혹은 복수였다. 어쩔 수 없이 감내내야 했던 현실과는 달리 작품 속에서는 마음대로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었으니 짜릿하기도 했으리라. 


    울프의 큰아버지 ‘피츠제임스 스티븐‘ 의 가족들도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피츠제임스에게는 네 딸들이 있었는데 모두 미혼이었다. 그중 로자먼드와 도로시아는 종교에 열성적이었는데 버지니아와 바네사를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끊임없는 시도에 짜증이 난 버지니아 울프는 특히 도로시아가 자신들의 활동을 무시하는 것을 참기 어려웠고 평소 그녀의 우둔함과 게걸스러움을 증오하기도 했다. 도로시아에 대한 이러한 감정은 [댈러웨이 부인] 중 클라리사가 딸의 역사 선생인 도리스 킬먼에게 품는 반감 속에 숨어있다. 큰아버지의 아들 중 하나로 고등법원 판사였던 해리 스티븐 역시 클라리사를 사랑했던 피터의 이미지를 제공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인도에서 돌아왔을 때도 주머니칼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모습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작품 속에 주변인물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도 포함시켰다. 결혼하기 전에 몰리 대학에서 무보수로 2년 정도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비록 대단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버지니아가 계급과 교육에 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버지니아로 하여금 여자들을 위해 봉사했던 그녀의 어머니 줄리아와 언니 스텔라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 창문이기도 했다. 몰리 대학은 노동자들을 위해 워털루 거리의 옛 목사관 부지에 설립된 야간 학교였다. 학교에서는 그녀에게 작문 수업을 원했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었다. 기억해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강의록도 써야 했다. 버지니아가 작문반을 맡았을 때는 그 대학에서 가장 쓸모없는 반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07년 독서반을 맡고 나서는 수업에 진절머리를 냈다. 수업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데다가 학생들은 수업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업은 그 해 말에 끝났지만 그 일이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는 걸 20년 후에 알게 된다. 당시 버지니아 울프가 강의를 들었던 한 남학생과 가까워졌는데 그 일화를 [댈러웨이 부인]에 끼워 넣은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셉티머스는 집에다가 쪽지 한 장을 남겨 놓고 런던으로 떠나온다. 일을 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야간 대학에 다닌다. ‘내성적이고 말을 더듬는 청년이었으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됐다.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던 미스 이사벨 폴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책도 빌려주고 짧은 편지를 주기도 했다. 셉티머스는 그녀가 아름답고 현명하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꿈을 꾸고 그녀에 대한 시도 썼는데 정작 그녀는 그가 쓴 시를 붉은 잉크로 고쳐 돌려주었을 뿐이었다. 전쟁이 나자 셉티머스는 바로 자원입대를 했다. 영국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영국은 바로 셰익스피어와 녹색 드레스를 입고 광장을 거니는 미스 이사벨 폴이었다.


    버지니아가 셉티머스에게 자신을 투영시킨 부분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신경쇠약 상태에서 환영을 보고, 낯선 목소리들에 시달리고, 새들이 그리스어로 노래하는 걸 듣기도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셉티머스가 보는 환상들은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버지니아 울프는 셉티머스의 광기가 작가 자신의 것으로 읽히게 될까 두려워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듬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 셉티머스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닥터 홈즈나 닥터 브레드쇼는 버지니아 울프를 치료했던 의사들에 대한 냉철한 조롱이자 풍자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작품 속에 자신을 등장시킨 건 [댈러웨이 부인]이 유일한 건 아니다.  두 번째 장편인 [밤과 낮]은 자신의 구혼 시절을 다룬 작품이었다. 울프는 이 작품을 언니인 바네사에게 헌정했고 출간 이후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여주인공 캐서린을 바네사로 생각해 달라고 썼다. 그러나 [밤과 낮]은 바네사의 삶을 모델로 하는 소설이라기보다 레너드가 자신들의 구혼 시절을 소재로 삼아 쓴 [지혜로운 처녀들]의 버지니아 울프 버전으로 보인다. 캐서린은 버지니아와 마찬가지로 저명한 문필가 집안에서 태어난 데다가 미모와 명민함을 갖췄다. 캐서린의 몽상적인 기질도 버지니아 자신을 닮았다. 구혼자를 물리치고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남성과 결혼한다는 점에서도 캐서린은 바네사보다는 버지니아에 가깝다.


    [등대로]에서는 여러 시기의 버지니아가 동시에 등장한다. 램지 부인과 함께 지내던 유년기의 캠, 아버지와 힘든 시절을 보내던 사춘기의 캠, 그리고 화가 릴리 브리스코는 모두가 버지니아 울프다. 특히 릴리 브리스코는 [등대로]를 쓰던 당시의 울프와 같은 나이로 등장한다. 릴리 브리스코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글을 쓰던 버지니아 울프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여다 보이는 게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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