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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4 개로 난 여름

by 라문숙

올해는 모종을 심지 말자고 했던 남편이 마음을 바꿨다. 어느 봄날, 운동하고 돌아오다가 모종을 늘어놓은 좌판에서 호박, 오이, 토마토 모종을 사 왔다. 호박이랑 방울토마토는 한 개, 오이는 두 개다. 우산처럼 커다란 잎을 달고 무성하게 자랐던 호박은 열매를 잘 맺지 못했다. 제법 모양을 갖춘 건 두 개, 그마나 하나는 따다가 잘못해서 옆집으로 넘어가 버렸다. 폭염에 잎은 시들어가고 호박꽃을 본 지도 오래전이라 호박이 열릴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남편이 호박이 하나 제법 컸다고 알려준다. 커튼을 들어 올리고 호박넝쿨을 살폈다. 남편이 어른 손바닥만 한 호박을 들고 와서 아일랜드 위에 올려놓았다.



고추 꽃, 방울 토마토 꽃


일그러진, 뚱뚱한 호박이었다. 매끄럽고 날씬한 형태의 연초록색 호박은 아닐지라도 근육질의 어깨를 닮은 호박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공연히 망설여졌다. 양쪽 꼭지를 자르는데 칼이 들어가는 느낌이 이상했다. 길게 반을 가르니 호박씨가 나란히 들어있다. 겉은 멀쩡해 보였는데 안쪽에서는 벌써 씨앗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수분이 빠지기 시작하는 씨앗주머니 주위로 호박이 푸석했다. 아쉬운 대로 푸석한 부분을 잘라내고 썰었다. 올해 마당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호박일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호박과 달리 오이는 풍년이었다. 오이 일곱 개가 모이면 오이김치를 담갔다. 아삭하고 짭조름하게. 김치가 귀한 여름을 요긴하게 났다. 문제가 된 건 오이의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이었다. 오이김치를 네 번째로 담그던 날은 이미 신기함도 기대감도 사그라져서 귀찮기만 했다. 오이는 일곱 개를 넘어 열 개가 되고 열다섯 개가 되었다. 냉장고 야채칸에 오이가 늘어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피클을 담고 간장 장아찌를 담그기도 했다. 지금 오이덩굴에는 노각이 된 오이가 세 개 달려있다.




방울토마토 역시 풍년이었다. 한동안 마당에 나갈 때마다 구슬 같은 방울토마토를 따느라 신이 났다. 올해는 유난히 달기도 해서 나는 파스타를 만들 때마다 조르르 밖으로 나가 토마토를 양손 가득 담아 오기도 여러 번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견디기 어려운 폭염에 그대로 노출이 된 토마토는 벌써 갈빛으로 시든 부분이 보인다. 카레를 끓이다가 갑자기 토마토 생각이 나길래 나가봤더니 붉디붉은 토마토가 반짝인다. 시든 잎과 익지 않은 토마토가 한 몸이다.


늙은 호박과 농익은 토마토를 넣은 카레 옆에 붉은 양파를 넣어 담근 오이 피클을 올렸다. 내일은 또 뭘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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