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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Aug 22. 2024

다정도 병인 양하여

책장 정리

  책 정리를 하고 있다.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은 과감히 빼버리고 빈자리를 많이 만들어두고 싶어서다. 빈자리에 다시 새책을 끼워 넣으려는 건 아니고 그대로 비워놓으려고, 책장에 듬성듬성 책을 놓고 한 권에서 다음 권으로 넘어갈 때 오래 뜸을 들이려고, 글자 말고 글을 읽으려고 한다. 여러 번 읽었어도 다시 읽고 싶은 책들만 남기려는 속셈이다. 오래되어 반들반들 손때가 묻은 책장 하나만 들여놓고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변한 건 아니지만 동시에 '나'를 읽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그뿐인가. 지금 내 방보다 조금 더 큰 창문을 갖고 싶기도 해서다. 창문을 열고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며 새소리가  듣고 싶어서. 나뭇잎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속살거리는 걸 바로 앞에서 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욕심을 버리라라고들 말을 하는데 버릴 욕심이 어디 있나. 가진 욕심도 제대로 꺼내놓지 못했는데.


  책장 정리는 해마다 거르지 않는다. 차마 못 버리고 여태 끼고 있었으나 정말 다시 읽지 않을 양이면 이번에 모두 정리할 요량이다. 책등의 제목을 읽어나가는, 마음 졸이는 일을 다시 하기로 한 거다(무언가를 내 삶에서 없애버리는 일이니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마음 졸이는 일이다). 그런데 지지부진이다. 꺼내 놓으면 옆에서 남편이 비명을 지른다. 그걸 왜? 아니, 책은 내가 읽지 자기가 읽나? 그러면서도 책 든 손이 움찔거린다. 어떤 책은 그러거나 말거나 과감히 내려놓지만 어떤 책은 슬그머니 다시 들어간다. 바로 [사회학에의 초대]와 [현대사회의 계층]이 그랬다.  너무 오래되어 페이지마다 가장자리가 진한 갈색이 되어있다. 1학년 때 읽었던 책들일 것이다. [사회학에의 초대]는 아마 번역자 때문에 버리지 못했을 것이고 [현대사회의 계층]은 유난히 계층론과 갈등론을 좋아했던 내가 기념으로 갖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얇은 책으로. 책 정리를 할 때마다 줄어들었던 전공서들 중 마지막 두 권이 그래서 살아남았단 이야기. 오늘은 브리태니커와 보보담, 요리책 몇 권과 여행가이드북, 공연 프로그램이랑 전시회 도록들이 집을 떠난 날. 정리는 아직 멀었다.


  책장 한 칸에서 처분할 책이 한 권도 나오지 않으면 좋아하는 책만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도 이 많은 책들을 내가 다시 읽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면 자신이 없어진다. 정리하는 데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확신이 아닐까.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믿음이 없으면 책방이 창고로 변하는 일은 몇 번이고 반복되겠지. 내일 역시 꼼꼼하게 처음처럼 살펴볼 예정이다. 다정도 병이란 말을 하기에는 우습지만 지금은 냉정함이 필요한 시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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