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관 야채코너에서 비닐봉지에 포장된 취나물을 보고는 냉큼 집어 들었다. 한여름에도 생취가 있네, 반가웠다. 며칠 전 다녀온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묵은 취나물을 달게 먹었던 기억이 한몫했을 것이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소금을 한 줌 넣었다. 취를 삶으려는 것이다. 물을 받아 취를 넣고 헹구려는데 구멍 난 잎이 제법 많이 보인다. 하나 둘 집어내다 보니 짓무른 잎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부릅뜨고 온전치 않은 잎들을 가려냈다. 그래도 반너머 남았으니 다행이라 할까. 끓는 물에 뻣뻣한 잎을 넣고 데쳤다. 냄비 가장자리가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취나물은 조금 질긴 편이니까 살짝 더 삶았다. 찬물에 헹구고 힘주어 짜서 들기름과 깨소금에 무쳤다. 취나물 한 줄기를 입에 넣었다. 기대하던 맛이 아니었다. 뻣뻣하고 질겼다. 그래, 제철이 아니니까, 여름도 벌써 끝나가는데 봄날의 그것처럼 보들보들하리라 생각했으니 내가 바보다, 속으로 중얼중얼하다가 뒤늦게 깜짝 놀랐다. 여름이 간다고?
한밤중까지 요란하던 매미소리가 뚝 그쳤다. 아침에 나가면 손톱만 한 도토리를 단 참나무 가지들이 밟힌다. 연두색 밤송이가 굴러다니고 산비둘기가 아침부터 요란하게 들고난다. 며칠 안 본 사이 부추 꽃봉오리가 맺히고 채송화 줄기가 가늘어졌다. 뒤늦게 심은 수세미가 덩굴손을 냈다.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층층나무 작은 열매들이 익어간다. 조기 아래 삼거리 모퉁이 집 담벼락에 붙어사는 대추나무에 가지가 휘어지도록 달린 대추가 물들어가는 걸 보고 놀란 게 며칠 전이다. 한창 봄인 듯 제비꽃이 돋는다. 철을 모르는 게 풀꽃만은 아니란 걸 모르지는 않지만 제철 아닌 취나물을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어느 계절을 살고 있나요? 자연스러운 것, 필연인 것, 정해져 있는 것들이 새삼스럽다. 딛고 선 땅이 흔들리는 기분, 보이는 대로 믿어도 될지 불안하다. 여름이 간다고? 어제보다 조금 여윈 달이 높다. 가을이 오는 게 보여? 내내 여름이고 싶은 사람이 여름에게 묻는다. 정말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