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이 피었다. 봄에 분명히 피었다가 진 걸 기억한다. 꽃차례를 제때 잘라주지 못한 걸 뒤늦게 알고 씨방이 맺힌 가지를 자르며 미안했던 것도 생생하다. 올해 라일락은 건강히 지내는 것 같지 않았다. 꽃이 지고 얼마 후부터 잎이 말렸다. 가물어서 그런가 싶어 물을 듬뿍 주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장마가 왔을 때, 폭우 속에서도 라일락 잎들은 회복하지 못했다. 비가 잠시 그친 어느 날, 도르르 말린 라일락 잎들을 가지째 모두 잘랐다. 한여름에 벌거벗은 나무라니! 볼 때마다 걱정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상해있을 때 심은 나무였다. 주방 창으로 라일락을 볼 때마다 잘 자라라고, 그래야 나도 산다고 되뇌었다. 무엇에도 기댈 게 없어서, 모두가 떠나가는 것 같아서, 담아둔 말을 영영 꺼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나무가 싱싱해 보이면 힘이 났고 시들어 보이면 가슴이 내려앉았다. 첫 꽃이 피었을 때 안도했다.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라일락 꽃처럼 작지만 향기롭게. 그랬던 녀석이 덜컥 병이 든 것이다.
가지가 뚝뚝 잘린 나무에서 작은 잎이 돋아나기도 했지만 염천을 견디기에는 무리였다. 투명하게 반짝이던 연둣빛 잎새들은 며칠 살지 못하고 말라 버렸다. 얼마나 자랐나 보러 나갔다가 말라 바스러지는 잎들을 손바닥에 올려놓는 일은 서러웠다. 그늘이라도 만들어줘야 했나? 늦은 사람의 말은 변명 이외 아무것도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지 않았던가.
엊그제 꽃이 핀 걸 보았다. 지금은 팔 월인데?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시 살아난 기쁨일까? 철 모르는 어리석음일까? 꽃봉오리는 가지 끝마다 달렸다. 별을 닮은 보라색 꽃, 향기가 폴폴 나는 오후에 철 모르는 꽃을 탓하고 싶지 않으니 나는 이 꽃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