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일기 #3 / 쎈 소설을 만났다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 안전가옥

by 엄마의도락

쎈 소설을 만났다. 살인이 난무하고 읽는 내내 목구멍 어딘가와 머리통 복부가 굉장히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소설. 솔직히 이런 내용의 소설이었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나는 이런 장르를 워낙 멀리하기 때문에 (보고 나면 한낮에도 공포스럽고 한 동안 잠을 못 이룬다)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이 소설. 참 좋다는 말만 듣고 읽게 되었다.

읽는 동안에는 불편함을 무릎 쓰고 무언가에 홀린 듯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어내려갔다. 마지막 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를 보면서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라는 탄식이 깊은 곳에서 흘러 나왔다. 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


1. 초대

회를 먹고 17년째 가시가 목에 박힌 여자. 회를 먹어야만 하는 그 상황. 어떤 마음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슬퍼졌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만 나도 어릴 적엔 더더욱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자기주장을 펴고 마음껏 떼도 부리는 모습을 보면, 그래.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 억압된 삶을 살아온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길을 잃는 기분이다.

가스 라이팅을 당하는 채원. 채원을 늘 기분 나쁘게 교묘하게 평가하는 남자 친구 정현. 정현은 변한 게 없는데 채원은 정현의 말 한마디로 많은 것들이 변해간다. 그러면서 태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 리버뷰 리조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2. 습지의 사랑

숲과 물의 사랑. 4편의 이야기 중 그나마 사랑스러웠던 이야기에 속한다. 물론 유령이라는 점에서 섬뜩하기도 하지만 사랑이 스며들면서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물은 놀러 온 사람들을 부러워도 하고 얄밉게 보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둥둥 떠다닌다. 시간이 참 느리게 흐른다. 그러다 숲을 만난다. 진짜 이름은 이영. 늘 무언가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이영. 나를 덜 희미하게 만드는 것들. 그리고 이렇게 너를 만나기도 하고.

산사태가 나면 물은 육지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골프장 건설로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글에서 보여주는 인간들의 환경파괴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공간 때문인지 소설 아가미가 생각나기도 했다.


3. 칵테일, 러브, 좀비

가정 폭력. 아빠는 뱀 담근주를 드시고 좀비가 된다. 코로나가 유행했듯이 머지않아 정말 좀비가 생겨서 지구를 덮치는 건 아닌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수가 없이 아빠를 그렇게 처리(?) 하고 마지막에 국가에서도 굿판을 벌인다.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번진다.


4.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그것도 아주 놀라운.

운수 좋은 날 마냥 엄마가 먹고 싶다는 초밥을 사러 나간 사이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아들은 엄마가 초밥을 먹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아빠는 엄마를 죽이고 자식은 아빠를 죽인다. 처음에 딸이 아빠를 죽인 줄 알아서 중간에 “제가 이 분 아들입니다.”라는 대사에 멘붕이 와서 검색까지 해볼 지경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3번이 있어도 그래도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는 것. 믿고 싶지 않지만 인생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타임 리프 소설. 과거 또는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면 정신을 번쩍 차리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딘지 모르게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을 덮으면서 기립 박수 쳐 주고 싶었다. 와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덕분에 몰입도 높은 기나긴 미로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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