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일궈가던 나의 일상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엄마라는 자리는.
마음에 바람이 든 듯 참 맥 빠지는 한 해를 마무리했다. 코로나로 문을 열더니 (아이들) 독감으로 문을 닫은 한 해였다.
100일 즈음 채워가던 새벽 기상
내일 가야지 하루하루 미루던 달리기
나를 위한 글쓰기
아이와 함께 시작했던 영어 책 읽기
비장했던 나의 일상 루틴들이 모래성처럼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모든 게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다 내팽개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있는 트리조차 꺼내지 않고 게으름은 점점 극을 달했다. 피로와 스트레스로 귀에 이상이 왔고, 남편과의 소통조차 불편한 감정만 남았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인스타 피드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인사들로 가득했다. 나는 누워있는 아이들 곁에서 한 해 중 가장 초라한 모습을 하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핸드폰 안에 반짝이는 불빛들이 참 싫었다. 이런 내가 참 한심했다.
그중 가장 부러웠던 건 한 해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돌아보고 정리해보는 것이었다. 나도 한 해 동안 아이들에게, 그리고 책에 얽매이고 집착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내가 얼마만큼의 책을 읽었는지 내가 읽은 책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읽은 책 중에서 나에게 최고의 책은 어떤 책이었는지 말하라고 하면 음... 결과물이 없었다. 분명히 나에게도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런 걸 헛살았다고 하는 건가.
이대론 안 되겠다! 나를 위한 책 한 권을 만들어야겠다.
먼저 하루 동안 했던 나의 업적들을 적는다. 오늘 꼭 해야 했던 일들.
오늘 쓴 글은 무엇인지
오늘 본 영상은 무엇인지
감사했던 일
기분 나빴던 일
운동, 청소
어디가 아팠는지
누구와 연락을 했는지
깜짝 놀랐던 일은 있었는지
쭉 적어보고 하루를 한 줄 평으로 작성해 본다. 프린트해서 바인더에 꽂는다. 하루하루가 쌓이면 한 달이 되겠지. 한 달이 되는 날에는 최고의 책, 최고의 영화, 최고의 요리, 최고로 감사했던 일. 등 나만의 시상식을 기록하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엔 나도 올해 최고의 책, 올해 최고로 감사했던 일 등을 찾을 수 있겠지.
나를 관찰하고 나를 살뜰히 살피면서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나의 기분을 알아가는 것. 나와 친해지는 일.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모든 일상이 무너지고 나는 하는 일마다 왜 이 모양이냐며 한탄하고 있을 때. 비울 건 비우고 채울 건 채우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 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건 1이라는 숫자가 주는 힘인 거 같다. 매일 새로운 해가 뜨듯 나에게도 새로운 하루가 배달된다.
1월 1일에 써 둔 이 글을 12월 31일이 되었을 때 다시 꺼내보며
그래. 올 한 해는 정말 잘 살았다. 라며 나 자신을 토닥여줄 수 있길.
하루하루 나를 돌아보고 지키며 쌓인 한 장의 글은 나를 위한 꽤 괜찮은 책 한 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