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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Feb 07. 2021

[일상 관찰] 하루를 빛나게 하는 장면들

시장 풍경, 만원의 행복, 책 선물,  "미안합니다."

#1. 시장 풍경


명절 전이라 전통 시장이 모처럼 활기차다. 물건을 파고사는 사이는 오밀조밀하고 값 흥정은 뜨겁다. 생선가게 아저씨는 덤으로 한 마리를 더 주고, 콩나물을 파는 아줌마는 한 손 가득 듬뿍 건넨다. 야채가 싱싱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아줌마, 가녀린 손으로 나물을 손질하는 할머니,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놓은 넉살 좋은 아저씨까지 사람의 소리가 뒤섞여 있다.

    

 장모님과 아내는 전통시장 마니아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와 식자재마트에 밀려 고전하고 있지만 전통시장만의 매력이 있다. 장모님은 생선과 야채, 나물류, 잡곡 등은 필요한 만큼 살 수 있고 정을 나눌 수 있어서 전통시장이 좋다고 한다. 아내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생각보다 물건 값이 비싸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말한다. 세일과 1+1을 더하여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는 양은 적어지고 진공 포장이 그럴듯해서다. 그에 비해 전통시장은 날 것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채로 판매한다. 필요한 만큼만 사면된다. 호박, 상추, 부추, 당근, 오이, 시금치, 대파, 고추, 버섯, 브로콜리, 피망, 양배추, 두부를 조금씩 구입하면 5만 원에도 살 수 있다. 살림 고수인 장모님께서 전통시장을 몇십 년 동안 이용하는 이유다. 가공되지 않는 만큼 음식 준비에는 잔손은 많이 간다. 싱싱한 재료를 구입하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맞벌이 자식들을 위해 지금껏 온몸으로 헌신하셨다. 장모님 요리 솜씨는 웬만한 음식점 수준을 넘는다. 그 덕에 입은 늘 즐겁다. 장모님의 손품, 발품, 마음품이 빚어낸 요리는 말하지 않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2천원 씩 만원에 득템

#2. 약초 사장님과 대화와 만원의 행복


시장을 보면서 아내와 동행하고 있었다. 약초 가게에 헌 책들을 발견한 아내는 살 책이 는지 둘러보라 했다. 작은 책장에는 1,000~2,000원으로 표시된 100여 권의 책이 있었다. 언뜻 보니 장르별로 책이 다양하고 평소 읽고 싶던 책도 였다. 약초를 파는 분께 “책값이 너무 싼 것이 아닙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런데 대답이 강렬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요. 정년퇴직하고 보니 1,000원도 귀합디다.”


 “책 종류가 다양하고 좋은 책들이 있어서 궁금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는데 버리기가 아까워 조금씩 판매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셨는지요.”


 “공대를 나와 에너지 관련 회사에서 제대한 지 5년은 되었지요.”


 “약초를 판매하는 곳에서 책이 있어 신기했습니다.”


“연금은 받고 있지만 약초에 관심이 있어서 장날마다 이곳에 옵니다. 평소에는 목공예를 합니다. 몸을 움직이니 건강은 덤이지요. 앞으로 제대 후에 40년을 살지도 모릅니다. 스스로 살길을 찾지 않으면 노후가 더 불행해질 겁니다. 약초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목공예로 소일거리를 하면서 용돈도 법니다. 큰 욕심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책이 맺어준 짧은 인연입니다. 약초가게에 책이 없었다면 사장님과의 대화도, 중고책 구입도 없었겠지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책연’을 귀히 여깁니다. 사람이 곧 움직이는 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3. 책 선물의 의미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는 주로 책을 선물하는 편이다. 지인의 취향을 생각하여 신중하게 책을 선택하고 시간의 공백은 손 편지로 적어 책에 끼워둔다. 상대를 생각하며 그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성껏  쓴다. 나중에 읽는 소감을 말해준다면 참 고마운 일일 것이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공감대가 생기게 되면 대화 소재도 된다.  그래서 책 선물을 해준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지치고 힘든 이를 다독이기도 하며, 낙심해 있는 자에게 용기를, 슬픔에 있는 사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좋은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듦을 믿는다.

#4.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아내의 요리는 한마디로 정성 그 자체다. 요리에 심혈을 기울이며 온 힘을 쏟는다. 가족이 잘 먹어주기만 하면 된다면서 식사 때마다 가족 취향을 고려한다. 매번 메뉴를 바꾸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평소는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당신이 만든 정성스러운 요리에 힘이 나네”라는 감사인사와 설거지가 내 역할이다. 오늘은 시장에서 많은 물건을 구입한 터라 저녁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저녁식사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냉장고에 하나 둘 정리하다가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야채를 종류별로 나누고, 시금치를 다듬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쉬지 않고 주문하는 아내에게 불쑥 한마디를 하였다. “힘들다. 그만 좀 하자” 아내는 이 한마디가 많이 서운했나 보다. 아내는 매일 이렇게 살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대충 해서 한 끼를 먹이는 일도 없는데, 주말에 조금 더 도와주었다고 내색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일요일 오후에도 출근할 형편이라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맘이 바쁜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음식을 매일 차리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무엇을 먹을까? 가족의 기호와 건강 생각, 장보기, 다듬기, 요리하기, 마무리 하기 등 쉴 틈이 없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날이 많으니 그만큼 아내의 고충은 컸으리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내 입장만 생각했다.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것을 포기하며 엄마 역할부터  아내, 며느리, 딸, 직장인에 집안일, 살림 챙기기까지 1인 7역을 해내며 버티고 있는 아내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다. 이 땅 위의 많은 여성들을 대표해서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큼 아내의 고충을 헤아리고 도와주는 것도 중요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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