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평범한 일상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큰 태풍 속에서는 당연했던 일들이 특별해지게 됩니다. 외출도 제약되고, 피해가 없도록 주변을 정비해야 합니다. 뉴스에 집중하며 안전을 염려해며무사 기도를 하게 됩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웠습니다. 아빠라는 자리는 더 무게가 있어야 했습니다. 아내를 안심시키며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았습니다. 작은 소식도 바로 전하며 아내를 다독였습니다. 나중은 웃으며 넘어갈 에피소드라지만 부모의 애간장은 녹고 또 녹았습니다. 3일 동안 연락두절인 첫째의 부재는 큰 태풍이 되어 온 가족을 삼켰습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걱정 사이렌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며 생각을 지배했습니다. 내 기준으로 아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생각의 간극이 크다는 것과 서로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아이는 친구, 고유함과 자유 의지와 부모는 기본, 성실 그리고 안전의 엇박자였습니다. 생각 밖의 생각을 하는 아이는 독서실에서 있었습니다. 말문이 막히면서도 부모의 욕심으로 밀어붙였던 점은 없는지 반성했습니다.
아내가 제게 잊지 못할 명언을 남겼습니다.
"경찰은 도와줄 수는 있지만 아이는 부모가 찾는다."
평소 아이의 습성을 잘 아는 아내는 몇 가지 정보로 셜록 홈즈가 되어 아이를 늦기 전에 찾았습니다. 아이가 당황하지 않도록 적응하는데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섬세하게 챙기는 것을 보며 나와는 생각 수준이 다름을 실감했습니다. 매일 책을 읽고 사색하는 사람이라지만 삶 속에서 매일 경험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돌아보니, 첫째는 생후부터 눈에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입원하며 항생제로 치료했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피부가 민감해 아토피가 생겼습니다. 비염도 심해서 새코 달라며 우는 때도 많았습니다. 아픈 아이를 보며 아내가 우는 날도 있었습니다. 부모가 처음인 우리에게 온 아이는 시행착오의 모델이었습니다. 아이도 지금껏 힘들었을 것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이유로 스트레스가 많다는 핑계로 독박 육아 환경을 만들었던 내 무능함과 어리석음이 쓰나미처럼 소환되었습니다. 잊고 살았습니다. 잊을 뻔했습니다. 아이는 그 시절의 불만과 결핍을 표현했습니다. 사춘기니까 다 그래라고 퉁치기에는 부족한 참회가 필요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