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공미] 다시 일어나기 위해 책을 붙잡았습니다.

힘들었던 30대 직장생활과 좌충우돌 성장기

by 모티

기본이 부족해서 힘들었던 직장생활

공무원 준비생활


대학생활을 보내고 남은 것은 평균 이하의 졸업 성적과 자격증 하나 없는 초라함이었다. 졸업 이후 막연하게 토익을 준비하며 불확실한 장래에 답답해하고 있을 때 여자 친구가 "공무원이 어떻겠냐"며 권유했다. 마땅한 대안이 없던 터라 도전하기로 했다. 시행착오를 줄이려 합격자 수기와 도움될 자료를 찾았다. 합격률 높은 학원을 수소문해 각오를 다졌다. 아침 8시부터 과목별 수업을 듣고 복습하면 저녁 11시가 되었다. 점심때도 혼밥을 먹으며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시간을 보충했다. 2달 코스인 종합반 과정 수업료, 집세, 용돈 등 부모님에 의존하는 죄송함에 수업 반장을 자원했다. 쉬는 시간마다 칠판을 지우며 강사 보조로 학원비를 아꼈다.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어 제일 앞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며 공부에 전념했다. 시험을 몇 번 보았으나 합격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절박했기에 시험이 끝나도 긴장을 놓지 않고 다음 시험을 대비했다.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임을 20대 후반에서야 뒤늦게 깨우쳤다. 꾸준함이 답이었다.


합격과 시련

2년 만에 9급 지방 행정직 공채시험에 합격하고 읍사무소에 시보 발령을 받았다. 막연한 기대로 시작했던 공직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 정시 출퇴근에 편할 줄 알았다. 단지 며칠 만에 공무원 장밋빛 청사진은 잿빛이 되었다. 낯선 환경 적응, 주민상대 종합행정, 마을로 자주 출장나가 일을 처리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여러 업무에 치여 야근이 잦고 휴일 날 출근하는 일도 늘었다. 직장생활은 스트레스받을 일도 많았고 눈치껏 잘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위계질서에 당연히 복종하는 조직문화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삶, 영혼이 없이 생활하는 직장생활에 점점 녹아 작아지는 촛불처럼 사그라들었다. 일하는 요령은 부족해 하루하루 버티면서 겨우 살아갈 뿐, 임기응변으로 허둥지둥 일을 처리하기 바빴다. 야근을 자주 하다 보니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거의 소진된 채로 퇴근할 때가 많았다. 주말에는 피곤해 절어 집안일을 챙기는데 소홀했다. 내 눈치를 보며 자연스레 아내가 챙길 몫이 늘어났다. 독박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아내에게 오히려 짜증을 내며 다투는 일도 많았다. 직장생활과 육아, 그리고 집안일을 아내가 전담하기는 너무 무거웠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내 앞에 한없이 작아지며 머쓱해진다.


길도 가꾸어야 한다. 정성스럽게.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어야 했다. 그럼에도 아내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이해만 바랐다. 사무실과 가정에서 쌓인 문제들에 근본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직장 상사와 잘 맞지 않아 불협화음일 때가 많았다. 스트레스 푼다며 술에 의지하니 몸과 마음이 점점 사막처럼 황폐화되었다. 몸에서 아프다는 뚜뚜드 뚜뚜 모르스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는데도 어리석게 근육이완제를 먹으며 버텼다. 무모한 책임감은 스스로 더 몰아붙이며 다그쳤다. 몸이 점점 무너지자 마음까지 불안한 상태로 불면증으로 이어졌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어 몽롱한 상태로 출근했다. 어깨에 돌덩이를 짊어진 것처럼 몸은 무겁고 등과 허리는 자주 통증에 시달렸다. 몸이 찌뿌등 하니 표정도 굳은 채로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만약 다리미로 등과 허리를 다릴 수 있다면 굳은 근육을 펴지 않을까라는 무모한 상상까지 했다. 물리치료를 받아도 잠시뿐이었다.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생체리듬이 깨지자 입맛도 없고, 다 타버린 장작처럼 삶의 의욕도 점점 약해져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시기였다.


1시간 이면 처리할 일을 온종일 붙잡고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쉬운 일도 어렵게 느껴졌다. 직원들도 차츰 염려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 환청도 들렸다. 일을 제때 하지 않으니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졌다. 업무량은 쌓이고 일은 줄어들지 않으니 긴장된 상황은 호흡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었다. 2주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앉아 있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번아웃 증후군이었다. 아픈 상태로 근무하는 것은 나와 조직에도 무책임한 일이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상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구했다.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는 나를 보며 아내는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는지 출근을 못하게 막았다. 아내가 내 직장 동료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아내도 급히 휴가를 내며 상심한 나를 안심시켰다. 병원에서는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로 몸을 우선 회복하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2주가 지나 건강이 일정 부분 회복되었다. 그런데 누적된 피로와 목디스크로 아내도 치료를 받게 되었다. 좋지 않은 상황이 맞물려 끊어야 하는 결단이 필요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위해서도 누군가는 휴직을 해야 했다. 개인회사 형편상 아내는 어려워 내가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정했다. 가족 모두의 안정이 필요한 시기였다. 마음은 자주 요동쳤고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내는 승진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건강하게 옆에만 있어달라고 울먹였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책에 매달리다.


몸도 관리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게 직장 생활을 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만 앞섰고 실력 쌓는 일에 소홀했던 지난 삶이 후회되었다. “직장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며, 내가 건강하고 잘할 때만 날 인정해 주는구나.”라는 사실을 몸이 망가지고서야 처절히 깨달았다. 너무 아픈 예방주사를 맞았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멍하니 방에 앉아 있는 나를 유치원에서 돌아온 첫째가 안아주면서 "아빠 괜찮아요. 힘내세요" 할 때가 떠오른다. 아이에게 위로받을 정도로 나약한 상태였다. 4살인 둘째가 놀아달라고 보채면 안아주지도 못했다. 휴직기간은 경제적인 손실을 감당해야 했고, 가장으로서 버팀목이 되지 못함에 따른 미안함이 컸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넘어지지 않을 실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책'이라는 동아줄이었다. 책 읽는 환경부터 먼저 만들어야 했다. 아내와 상의해 거실에 TV부터 없앴다. 책 읽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각 방에 있던 책장들을 거실 벽면에 배치했다. 읽어야 할 책들을 한두 권씩 구매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출근한 후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짬짬이 책을 읽었다. 처음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매우 혼란스러웠다. 읽어도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읽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읽었음에도 한 권을 읽는데 3주 이상 걸렸다. 기초체력이 없는 상태에서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 무모한 도전이듯 책을 완독 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글자와 씨름해야 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넘어졌는가?”,

“무엇이 문제였는가?”,

계속 질문하며 반성했다.


고민할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과 좋지 않은 습관이 드러났다. “나는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며 자괴감도 들었다. 이런 현실이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럴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육아휴직 기간이 곧 나의 삶을 리셋해야 할 시기라고”

책을 읽는 시간을 점차 늘리면서 독서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온몸을 휘감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 물에 빠져 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함으로 책을 붙잡고 간절히 매달렸다. 그러나 읽기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읽을 때는 좋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래도 읽는 순간만큼은 아픈 기억들을 잊을 수가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절반은 성공했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5개월이 훌쩍 지났다. 건강, 가족, 사랑, 신앙 등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회복 간이었다. 매일 아이들과 지내면서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는 시기였다.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며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수없이 "잘할 수 있어" 하며 마음다짐을 했다.


직장 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되다.

복귀하기 전 희망 근무지를 신청했다. 어린 들을 돌볼 수 있도록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지원했다. 운이 좋게도 지원한 곳에 결원이 있어 교육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었다.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3가지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이 바뀌든지, 책을 읽든지, 사는 환경 또는 근무하는 여건이 바뀌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3가지를 한꺼번에 얻었다. 근무하는 환경이 바뀌니 교수, 기업인, 강사 등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책을 더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사섭외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교육 트렌드를 알기 위해 관련 분야 책을 읽었다. 교육 설계를 위해 전문가들을 만나며 조언을 구했다. 효과적인 교육 운영을 위해서 문제점을 찾고 개선 노력을 병행했다. 다양한 독서는 강사 섭외의 폭을 넓혀 주었고 일부 내용은 과정 운영에 접목하기도 했다. 나름의 결론도 얻게 되었다. 최고의 교육과정은 좋은 강사, 과정 설계, 교육생의 태도라는 삼박자가 어울릴 때 나온다는 것이다. 교육 담당자로서 교육생들에 맞도록 과정을 설계하고, 오리엔테이션으로 학습 동기가 생기도록 도왔다. 그런 노력이 전해져 공무원 교육원이 달라졌다며 차츰 입소문이 퍼지는 것은 보람으로 남았다.

보람되는 직장생활

새로운 교육생과의 만남, 좋은 강사와의 인연이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들었다. 일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교육원은 교육생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이념을 떠올렸다. 교육준비부터 평가까지 교육생 불편이 없도록 먼저 살폈다.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자 나타난 변화였다. 강사에게는 미리 교육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수업시간마다 잠시라도 참관해서 모니터링했다. 쉬는 시간은 교육생의 목소리를 들었다. 설문에서 나온 불만들은 다음 과정에 반영하여 개선했다. 가급적 강사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며 의견을 나눴다. 강사들도 교육준비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강의를 하니 강사들도 교육과정 만족도가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윌리엄 엣츠는 “교육은 양동이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이해한다. 교육생들에게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보다 나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발로 뛰며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은 교육을 만든다고 확신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유명 강사들은 대다수 독서인이었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치열하게 전투하듯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그분들과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면서 내 삶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재능기부를 해달라며 사정하고, 강사료를 더 드릴 수 없어 집으로 초대해 다음 날 모시고 간 기억도 추억이 되었다. 그 당시 인연이 된 교수님, 기업인, 전문가 분들과는 지금도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어려운 일에 대해 서로 조언을 구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소비적인 삶에서 생산적인 삶으로


내게 집중하면서 불필요한 일들과 관계들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여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일하는 시간에 컨디션을 조절했다. 실패했던 지난날의 교훈을 떠올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소비적인 삶보다는 시간을 주도하는 생산적인 삶을 살도록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5년 동안 독서를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업무 부담으로 책을 놓을 때도 있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더 이상은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책 읽기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취미와 재미로 읽기 시작해서 이제는 성장과 행복을 만들어가는 독서로 나아가고 있다. SNS를 활용하여 지인들과 읽은 책을 나누고, 전국 공무원 대상으로 독서 커뮤니티도 운영하고 있다. 매월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온라인 특강을 들으며 독서력을 키우고 있다. 틈틈이 시간을 만들어 글을 쓰려 노력한다. 매일 식사가 입맛에 맞지 않듯 독서 가끔은 책 읽기가 지루할 때도 있다. 그래도 밥을 먹는 것처럼 독서를 실천하고 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을 공급하며 내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에너지원이다. 또한, 힘들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주고 다독여주는 나의 소중한 벗임을 알기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정호승 님의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를 보며 8년의 삶을 회고했다. 바닥의 의미를 경험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읽고 쓰며 실천하는 삶

책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배움에 겸손하고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꾸준한 책 읽기는 독서 근육을 강화하고 글쓰기에 도움됨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나누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내가 독서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문득 지금 중2인 큰딸이 힘든 사춘기를 보내는게 어렸을 때 함께하지 못한 시간의 부메랑은 아닌지 미안함이 든다. 젊은 시절 나를 채우지 못해 가족들도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다.


오늘 큰딸에게 용기 내어 사과했다. 아빠가 바로 서지 못해 모두가 힘든 거였다고. 아내와 큰딸에게 글을 나누며 함께 기도했다.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마음은 오해를 이해로 바꾼다. 그래서 오늘도 밀물처럼 책을 읽고 썰물처럼 글을 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글을 쓰며 내 안의 나와 만나는 훈련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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