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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Dec 10. 2021

[시 감상] 닳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닳다

          (이창훈)


너를 향해 세웠던 날이

닳아 간다는 건


너와 맞댄 시간의 모서리가

조금씩 닳아 간다는 것


서로 알아가는 일들이

앓아가는 일들을 거쳐

서로를 보며

고개 끄덕이는 일이 되는 것


닳아 가는 건

조금씩 닮아가는 것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곁에서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중>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어울림이 됩니다.

갈리거나 오래 쓰여서 어떤 물건이 낡아지거나, 그 물건의 길이, 두께, 크기 따위가 줄어드는 것을 '닳다'라고 합니다.


사람이란 글자에서 'ㅁ'이 닳고 닳아 'o'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되었습니다. 모난 부분이 서로 부딪혀 닳고 닳았습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하면 나는 작아지고 상대가 커집니다. 상대의 부족함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내가 채우면 되니까요. 상대가 힘들면 속상하고, 상대의 기쁨이 나의 행복니다. 함께라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든든합니다.


그 사람의 작은 몸짓도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감이 깨어나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바라보다가 바보가 되기도 합니다.


계절이 바뀔수록 걱정도 많아집니다. 기대가 커지고 당연함도 늘어갑니다. 부딪히는 일, 서운 한 일, 짜증 나는 일도 쌓입니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날카로움은 무뎌집니다. 나를 먼저 생각했던 마음이 상대를 향하게 됩니다. 상대에 맞추는 낯선 나도 만납니다.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집니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의식합니다.  상대가 덜 힘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좀 더 하게 됩니다.


사랑에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한결같은 '언제라'는 말이 녹아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을 알아갈수록 존중할수록 이해는 넓어집니다. 서로를 생각하다 얼굴도 닮아갑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일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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