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이면 가볍게 큰 딸 방을 정리합니다.1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일어나 화장실을 가면서 치워주자는 생각이 루틴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웬일이래"
어제 저녁 바닥에 나뒹굴던 옷가지와 바닥을 점령한 각종 물건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뭔가 있구나"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내가 서운하게 했나", "이제, 아빠가 안치우셔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이의 표정과 온갖 말풍선이 떠오릅니다.
큰딸은 유리잔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춘기입니다. 올해 중2가 되면서 주말 아침 모르게 방청소를 해왔습니다. 딸은 엄마가 하는 줄 알다가 아빠가 한다는 말을 듣게 된 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가족 간 대화할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큰딸, 아빠가 방청소를 안 했으면 좋겠니"
"네. 제가 할 수 있어요.(단호합니다)
"그렇구나. 사실, 아빠는 주말만 오는데, 뭐 해줄 것이 없어서, 네가 없는 방 정리가 너의 흔적과 대화하는 시간이고 기쁜 시간이어서 하게 되었어. 아빠는 전혀 힘들지 않아. 네가 부담되었다면 하지 않을게"
한참을 머뭇거리던 첫째는
"아뇨. 저도 아빠에게 죄송해서 그랬어요. 정리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해서요"
그렇게 청소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정리 못하는 저를 많이 닮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집에서 제 별명은 칠칠이였습니다. 옷도, 얼굴도, 하는 행동도 다른 사람이 손이 늘상 가야 했으니까요. 정리가 귀찮았습니다. 해주는 사람이 있기에 불편함도 몰랐습니다. 정작 문제는 직장에 들어가서였습니다. 정리 못하는 것이 습관이 된 터라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정리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말을 체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건정리, 서류정리, 서랍정리, 시간 정리, 생각정리.... 직장은 정리로 시작해서 정리로 끝나는 기승전정리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처음 모신 계장님은 정리 달인이었습니다. 덩치는 엄청 크신데 매우 섬세한 분으로 책상, 서랍, 보고서 등 깔끔쌈박 그 자체였습니다. 그분 옆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걸 보면서 "저렇게 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였습니다. 창고를 정리하거나 일손 돕기를 하실 때도'우와'였으니까요. 정리를 잘하는 계장님은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할 일을 미리 계획하니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근무하는 것만으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첫 직장에서 계장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아내의 이유 있는 짜증
연애 때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연애가 연습이라면 결혼은 실전입니다. 빙산의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나쁜 습관들이 하나둘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도대체, 당신 이란 사람은 어디까지 가야 하냐"는 정도로 저는 '불량품'에 가까웠습니다. 그중 단연코 '어질기 챔피언'이었습니다. 어떤 행동이건 뒷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더니 아내는 제 뒤에서 손을 넣어주다가 지쳤습니다. 자식은 귀엽기라도 하지만 정리 못하는 남편은 반품하고픈 대상 일순위일테니까요.
매번 미안해라는 말을 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이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부족함을 채워가는 게 부부라지만 한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니까요. 양심의 가책이 점점 커졌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부끄럽고 자책감도 들었습니다. 매사 건성건성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터라 눈에 보이는 정리 못함에 아내는 늘 짜증이 났던 겁니다. 사고는 남편이 뒷감당은 아내가 했으니까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 년째 그러고 있으면 천사도 변할 수 있는 시간일 겁니다. 면도하고 면도기 그대로 두기,세면대에 붙어있는 코딱지, 샤워 후 다른 사람 찡그리기, 설거지 후 주변 물난리, 자동차 키 찾기 대소동, 자동차 정기검사하지 않아 과태료 폭탄 등 셀 수 없는 지뢰를 터트렸습니다. 몇 년 전부터 엄마에게 소리듣는 것이 싫다면서 둘째아이가 아빠를 챙기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합니다.
문제는 나로부터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는 증조부 밑에서 자랐습니다. "오냐, 오냐" 감싸주시던 증조부와 지내며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았습니다. 식사 예절, 인사 예절 등 밥상머리에서 배운 기억이 드뭅니다. 성장에 필요한 기본 가르침이 부족한 터라 아내가 말하는 "도대체 당신의 끝은 어디인가요"라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유년시절 기억이 오버랩되자, 첫째가 더 이해되었습니다. 언젠가 어질어진 방을 보면서 아이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큰 딸, 정리가 힘들지"
"응, 아빠 내겐 어려운 일이에요"
"아빠가 도와줄게. 아빠도 그랬거든"
정리 못했던 아빠는 정리 못하는 딸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딸에게 이 말은 해주었습니다.
"정리 못하면서도 살 수 있어.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정리 못해서 다른 사람에 피해 주는 일이 많더라. 엄마는 항상 뒷감당하는 사람은 아닌데, 우리 셋을 위해 평생 저렇게 살 수는 없잖니. 각자 조금만 배려하면 엄마도 지금보다 더 행복할 거야."
우리 사회가 혼돈 속에 있는 건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르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잘했다고 어른들을 지금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가족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배움터입니다. 개성과 다양성은 존중하되 기준과 방향성은 제시하면서 살아가기에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단위가 됩니다. "가정에서 존중받는 아빠가 되자"가 새해 목표입니다. 금요일 퇴근할 때 아이들이 현관에 나와 "아빠 다녀오셨어요"라며 크게 인사합니다. 저는 제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내의 도움 없이는 인사도 받지 못하는 게 웃푼 현실입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방에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