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대지가 촉촉하듯 책비가 내려 마음이 여유로워졌습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만난 덕분입니다. 몇 달 동안 책 리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리뷰를 하게 하는 책이 고맙습니다. 정재찬 교수님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로 시 읽는 기쁨을 가르쳐준 분으로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삶의 언어를 찾는 14번의 시 강의로 초대합니다.
각자의 삶은 각양각색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어떤 배경을 그릴지, 어떤 물감을 쓸지는 다릅니다. 교수님은 대표적인 물감으로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라는 7가지 테마를 제시합니다. 그 안에 14개의 키워드로 인생을 조망합니다. 소주제와 궁합이 맞는 시를 소개하면서 "당신의 인생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으로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안온함에 마음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각 장을 머리글과 소개된 시입니다.
1장 - 밥벌이(생업, 노동)
"죽어라 일하는데 죽지는 않고, 그렇다고 일도 줄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도 지쳐 있나요? 그럴 겁니다. '소금 버는 일'인데 어찌 힘들지 않겠어요."
최지인님의 <비정규>
김사인님의 <중과부적>
허은실님의 <이마>
윤성학님의 <소금 시>
송경동님의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박목월님의 <모일>
김종삼님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2장 - 돌봄(아이, 부모)
"아이를 키우며 자란 건 다름 아닌 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부모님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늙어버렸네요. 인생은 그렇게 돌봄을 주고 돌봄을 받는 것이 아닐는지요"
김선우님의 <입춘>
박성우님의 <유랑>
김태정님의 <배추절이기>
정채봉님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승하님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안상학님의 <아버지의 꼬리>
3장 - 건강(몸, 마음)
"다이어트, 금연, 금주, 운동하기... '웰다잉'은 죄다 큰 결심을 필요한 일들뿐입니다. 마음도 그럴까요? 마음도 결심한다고 나아지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수열님의 <쉰>
임희구님의 <소주 한 병이 공짜>
김경미님의 <식사법>
문정희님의 <찬밥>
이상국님의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류시화님의 <패랭이꽃>
김경주님의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이훤님의 <군집>
박선희님의 <아름다운 비명>
황지우님의 <늙어가는 아내에게>
제4장-배움(교육, 공부)
"어릴 때 어른들은 "지금 그럴 때가 아니고 공부해야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드니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는 중년부터라고 합니다. '나무 학교'에 들어갈 때라는군요.
복효근님의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저녁>
마종하님의 <딸을 위한 시>
장석남님의 <옛 노트에서>
신경림님의 <길>
문정희님의 <나무학교>
김사인님의 <공부>
5장 - 사랑(열애, 동행)
"혼자 사는 건 외롭고 같이 사는 건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토록 뜨겁게 사랑하고 아이나 의리를 핑계 삼아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지요."
이영훈님의 <옛사랑>
강형철님의 <금화터널을 지나며>
정양님의 <토막말>
허형만님의 <사랑론>
문정희님의 <부부>
마종기님의 <꿈꾸는 당신>
제6장 - 관계(인사이더, 아웃사이더)
"세상과 자연 그리고 나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바라봅니다. 방탄소년단의 '페르소나' 가사처럼요. "내가 되고 싶은 나, 사람들이 원하는 나, 네가 사랑하는 나, 또 내가 빚어내는 나...."
나호열님의 <안아주기>
성미정님의 <김혜수의 행복을 비는 타자의 새벽>
RM, Hiss noise, PDogg님의 <페르소나>
정현종님의 <그대는 별인가, 시인을 위하여>
서안나님의 <곡선의 힘>
조정권님의 <독락당>
제7장 - 소유(가진 것, 잃은 것)
"책 버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읽은 책은 읽어서, 안 읽은 책은 읽지 않아서 못 버립니다. 봄볕 좋고 등 따숩던 아무 날, 저는 그냥 연구실의 책들을 왕창 버렸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계기 없이, 버릴 수 있어서 버렸습니다. "
피천득님의 <은전 한 닢>
김종삼님의 <장편 2>
유홍준님의 <벌고, 쓰고, 존재한다>
김행숙님의 <버리지 못한다>
배한봉님의 <입춘>
오민석님의 <먼 행성>
서정주님의 <푸르른 날>
이성선님의 <티벳에서>
이시영님의 <아버지의 모자>
황동규님의 <더딘 슬픔>
나희덕님의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52편의 시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몇 편은 이해되지만, 살면서 이해할 몫이라 여겨집니다. 읽는 동안 '좋은'이란 단어가 함께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누고픈 책입니다.
박웅현 작가님의 <여덟 단어>, 최진석 교수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 김종원 작가님의 <사색이 자본이다>도 오버랩됩니다.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인생 선배들의 삶의 정수가 담겼으니까요.
시인들이 조탁한 인생 시를 감상하며 웃다가, 울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솔직하고 싶은 나도 만났습니다. 사색하는 시간은 덤이었습니다. 삶이 새겨진 시와 문장에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좋은'을 전하는 삶을 살자" 고 다짐하게 됩니다.
마음, 공부, 아웃사이더, 가진 것, 동행, 교육, 열애, 아이, 생업, 봄, 잃은 것, 인사이더, 노동, 부모라는 14번의 강의는 사랑이란 바늘로 기쁨이란 씨줄과 고통이란 날줄을 엮은 아름다운 인생론입니다. 소개된 시들이 언제곤 등을 토닥이며 다독여 줄 것 같아 남은 인생이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