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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Mar 02. 2022

[시 감상] 도종환의 '폐허 이후'

시가 주는 영감을 기록합니다.


   폐허 이후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는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는다면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고비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만납니다. 세상에 내버려진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생깁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를 붙잡는 마지막 동아줄은 어린아이들과 아내였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손을 놓아버리면 남은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그깟 알량한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남에게 인정 못 받으면 어떻습니까. 솔직히 욕심은 많고 능력은 되지 않는 제가 싫어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나이 먹도록 이룬 것은 없고 쉽게 흔들리는 연약함이 싫었습니다. 나를 몰라서 생기는 어리석음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지는 않는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는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나를 아끼지 않았던 지난 삶이 한꺼번에 청구서를 내밀었습니다. 헛된 것에 목을 매다 모든 것을 잃을뻔한 과오는 한 번으로 족했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웅크리고 있던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상처 많은 내면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몰아붙이지 않겠다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굳게 닫혔던 본연의 나와 마주하였습니다.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였습니다.


#도종환시인#폐허이후#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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