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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공미9] 짧지만 강렬했던 6개월 독서모임

독서 소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다

by 모티

독서 소모임 결성을 제안하다

6개월 장기 교육의 첫날이었다. 자치회 임원 선출을 마치고 오후에 교육생 전체가 간단히 자기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 “42번입니다. 동기님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잠시 눈을 감아 주십시오.” 그리고 정현종 님의 방문객을 암송했다. “저는 오전에 84명의 동기들의 연락처를 입력했습니다. 방문객의 시처럼 한 분 한 분이 서로에게 어머 어마한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매주 한 권씩 책을 읽을 사람을 찾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며칠 후 교육 동기가 가입한 밴드에 독서모임 운영 방향을 안내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읽고 독서습관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공통 도서를 읽고 매주 돌아가면서 발표하며 각자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현장체험, 해외연수, 봉사활동과 겹치는 때를 제외하니 대략 20회 정도였다. 평소 읽는 분, 교육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분, 독서 습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 등 이유는 달랐지만 의지와 열정은 충분했다. 그렇게 10명이 모여 ‘다독다독’호는 천천히 출항했다.


첫 모임을 시작하다.


회원들 간 첫 만남의 자리였다. 회원들이 끝까지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독서노트를 선물했다. 매주 모임에서 나눈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하면 나중에 책을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경험도 소개했다. 독서 노트는 개인의 독서이력과 생각을 기록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어서다. 같은 책을 읽고서도 이해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공감하는 내용, 감동하는 문구, 책에 대한 호불호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차이를 인정해가는 과정이다. 독서력이 부족한 사람은 참여하여 배우는 기회로 삼고 독서력이 있는 사람은 아는 것을 나누며 이끌어줄 때 함께 성장하는 모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모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책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되 크게 문학과 비문학으로 구분하여 번갈아 읽기로 했다. 독서력을 고려하여 첫 달은 부담 없는 책으로 의견을 모았다. 첫 책은 고영성 작가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제안하며 발표하겠다고 하였다. 작가 소개, 집필 의도, 인상 깊은 문장, 느낀 점 및 실천 사례를 포함하여 2~3쪽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새로운 경험은 다른 경험의 든든한 토대가 된다.

1년 전에 SNS로 알게 된 분들과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하면서 얻은 경험은 혼자서 책을 읽을 때에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경험과 더불어 균형 독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매력적이었다. 독서모임을 주도한 분은 폭넓은 지식과 인품, 실력을 겸비한 독서고수였다. 대학 때부터 일주일에 1권 이상의 책 읽기를 30년 이상 실천하신 독서인이었다.


리더는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읽을 책을 선정하고 매달 발표 및 토론을 조율하며 종합적으로 정리를 해주는 역할이었다. 한 달에 2권의 책을 선정하여 한 권은 메인 도서로 토론하고 서브 도서는 개별적으로 읽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독서력이 뛰어난 회원들은 다른 회원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어 분발하도록 돕는다.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상적이다. 독서모임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양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발표자의 노력과 결과물은 독서모임을 좌우하는 왼쪽 날개가 되고,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오른쪽 날개가 되기 때문이다.

처음 독서모임에 참여하여 발표할 때는 부담이 컸다. 막상 발표를 하려고 하니 막막했다. 요령 없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음식을 급하게 먹는 것처럼 부담을 가지고 책을 읽기에만 급급했다.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없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독서력은 처음보다 별반 차이가 없다. 책을 발표할수록 차츰 요령이 생겼다. 책의 서문과 목차 맺음말을 꼼꼼하게 보아도 책의 전체적인 흐름 및 주요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의 궤적을 아는 것도 전체 글의 논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다가 중요 문장은 표시하여 앞 쪽 빈 페이지에 적거나 떠오르는 느낌을 간략하게 메모해두면 책의 얼개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읽을 때는 숲을 보는 것처럼 전체를 대강 파악하고 두 번째는 나무를 보는 것처럼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을 집중하여 읽는 것은 요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성장 발판을 위해서도 발표하는 기회는 적극 참여하고, 발표자가 아니더라도 발표자에 준하는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보통 발표자는 3회 이상 정독하게 되므로 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 정리된 내용은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브런치 등에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면 읽는 사람의 반응도 살필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책에 관심 있는 동료에게는 독서모임 또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라고 권하는 편이다. 독서모임 운영과 참여를 하면서 얻는 것이 많아서다. 보통 운영자는 책을 선정하고 회원들이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작년 초부터 시작한 독서모임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정기 모임을 가지며 점심을 먹으면서 독서토론을 한다.

조금 익숙해지자 문화가 있는 독서모임으로 진화하였다. 2달에 한 번은 회원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갖고 유적지와 관광지를 돌아보는 문화 활동과 병행했다. 책에서 배운 내용이 현장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어서 보람되기도 하였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과 독서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취미활동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자녀 양육, 노후 준비, 건강관리 등 공통 관심사에 대한 앎이 확장되었다. 회원 간 독서력의 차이는 있었지만 잘하는 분야에서는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독서모임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운영진이 독서 모임의 목표에 대하여 중심을 잡아야 한다. 독서력이 좋은 분들 3~4명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회원들은 최소한 책을 완독하고 오는 것은 기본으로 해야 한다. 책을 읽고 오지 않는 사람은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어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무임승차하는 문화는 경계해야 한다.

한 달에 한번 독서모임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같은 문장에서도 느끼는 점은 서로 달랐고 때론 의견 충돌이 있기도 하였다. 다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의 지식은 극히 미미했다. 독서력은 지금까지 노력한 시간의 축적이었음을 알면서도 함께하는 회원들의 수준이 부럽기도 했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끊임없이 패스를 주고받는 운동경기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코로나 19로 재택학습을 시작하다.


코로나 19는 장기교육의 모든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50여 일이 지나 동기들끼리 친해지고 해외 연수를 가기 위해 정책반 별로 들뜬 마음으로 계획서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주말에 갑자기 날아온 문자 메시지에 당황했다.

“중견리더 과정은 다음과 같이 2.24~3.6(2주간) 개인 연구활동(자가학습)으로 대체하오며, 해당 기간에는 교육원 내원과 다중집합시설 등 방문을 최대한 금하여 주시고 건강 이상 등 특이사항 발생 시 연락 바랍니다.”


집합교육은 2월 말부터 자가학습(사이버 교육)으로 대체되었다. 일상적인 활동은 제약되었다. 집에서 대기하며 오전, 오후 이상 유무를 유선으로 보고하며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길어야 한 달 정도면 교육원에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허무하게도 무너졌다. 코로나 19가 더욱 확산되어 두 달하고도 반절이 넘어가 10주의 교육 기간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한편으로는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며 고생하는 환자들, 의료진들, 그리고 현장에서 검사와 예방에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면서도 집에만 머물러야 했던 웃픈 현실에 안타까웠다. 외국어 및 취미 활동, 현장체험, 국내 벤치마킹, 해외 정책연수 일정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몇 수 끝에 오게 된 많은 교육생들은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독다독’ 회원들은 집에 있는 동안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하였다. 매주 책을 읽고 각자 요약한 자료를 나누었다. 회원 중에 등단한 분이 있어 애정 어린 피드백은 회원들에게 지속할 수 있는 격려가 되었다. 집에서 머무는 동안 정성스레 준비한 발표자와 호응하는 회원들은 감동 이야기를 한편씩 써 내려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고 정리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집중해서 읽을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힘든 시기에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책을 읽고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배워갔다. 만약 독서 소모임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집에 있는 여건이 더 힘들지는 않았을까?


작가와 만나는 시간을 갖다.

공통 도서로 읽은 책이 인상 깊어 저자에게 감사 메일을 보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게 되어 큰 도움을 받아 작가님을 강사로 모시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몰라 연락처를 남겼는데 놀랍게도 바로 작가님께 전화가 왔다. 초청해 주면 기꺼이 오겠으며 시간이 허락되면 독서모임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다.

작가님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강의 들으면서 궁금했던 내용, 글을 쓰는 방법, 책을 읽는 요령 등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하기 된 것은 회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고 싶어서였다. 계속해서 책을 읽도록 돕고 싶었다. 시군에 복귀하더라도 그곳에서 독서 모임의 리더로서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교육에 복귀하며 소모임을 개별 독서로 전환하다


10주간의 공백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주었다. 기쁨은 10주 동안 구심점이 되어 독서를 하면서 값진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슬픔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교육 기간에 매주 모여서 발표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는 분위기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며칠을 고민했다. 작가와의 만남을 끝으로 5개월간 독서모임은 마치고 개별 독서로 전환하여 목표한 바를 이루자고 하였다. 한승원 작가님의 <물에 잠긴 아버지>의 배경이 되는 장흥 유치면 수몰지역으로 문학여행을 끝으로 ‘다독다독’호는 닻을 내리기로 하였다.

일주일에 책을 한 권씩 읽고 발표하는 목표는 비록 달성하지 못했지만 6개월을 의미 있게 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부족한 리드였지만 함께 해준 동기 선배들이 무척 고마웠다. 처음에는 독서력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책이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되어가는 순간들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10명이 돌아가며 발표했던 날들,

책을 읽으며 울고, 웃으며 서로를 알아갔던 날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부대꼈던 시간들,

코로나 19로 더 끈끈해진 독서모임,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위해 모임을 마쳐야 했던 아쉬움,

마지막 문학여행을 끝으로 마무리했던 순간까지

목표는 미완이었지만 가치와 의미는 완성을 향했다.


때론,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속도조절과 함께라는 가치임을 배웠다. 지식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경륜과 지혜는 부대낌을 통해 시간의 숙성에서 무르익어감을 경험했다. 다독다독 동기들과 함께라서 6개월의 교육 기간은 더욱 찬란했다. 대장정을 마치는 문학여행 중 커피숍에서 깜짝 파티가 열렸다. 그동안 모임을 열정적으로 이끌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작가가 되라는 의미를 담아 회원들이 만년필을 선물로 주었다.

캘리그래피를 연습하여 독서 문구를 선물,

손 편지와 함께 회원의 관심사를 고려한 책 선물,

동기들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전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저와 함께 좋은 시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선물들은 앞으로 게으름을 채찍질할 죽비로 사용하겠습니다. 선배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얻은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때론 지나친 열정 때문에 불편하게 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 속도만을 고집해서 죄송했습니다. 9명 한 분 한 분이 감동의 책이셨습니다. 동기라서, 함께라서 고맙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함께 나누었던 시간에 대한 감회와 짧지만 강렬했던 지난 일들이 회상되었다.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꾸준한 독서 습관이었다. 내가 변하고 성장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었다. 시군에 돌아가서 독서 모임의 리더로서 아름답게 지역을 성장시킬 모습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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