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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 정문선 Aug 11. 2022

[시 감상] 첫 마음

시가 주는 울림에 멈춥니다. 시를 사랑합니다.

  


     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시를 좋아하는 것도 쉼을 위해서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 한 편을 찾아 틈틈이 읽고 지인들과 나눈다. 때에 맞는 시가 주는 위로와 감동이 적지 않았다.


동화작가 정채봉 시인님의 <첫 마음>이 좋았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살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학교 입학 후 새책, 첫 출근하는 날, 아팠다가 나은 날, 개업날의 첫 손님, 세례 받는 날 빈 마음, 여행을 떠나던 날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당연함에 익숙하다. 그래서 초심을 지키기가 어렵다. 처음 먹은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삶은 덜 메마텐데 잘 되지 않는다. ~한다면의 가정보다 덜 후회하도록 지금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지혜롭다.


잠시 쉼을 위해 시 한 편을 읽는 것이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메마른 삶에 단비가 되었다.  어느 순간 서툰 생각을 표현해보니 시인의 고통도 알게 되었다. 적확한 단어를 찾고 시어를 다듬으며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상상도 했다. 러나 인은 넘사벽이었다.


음닻을 내리는 시에 멈춘다. 시인과 대화하며 시선을 따라간다. 시인을 알수록 삶의 결을 볼 수 있었다. 좋은 시는 좋은 생각을 부른다. 시가 주는 깊이와 넓이는 사유의 크기에 비례다.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아픔이 있을까? 어떤 방황을 했을까? 온전히 헤아릴 수 없지만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을 테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처럼 대추 알 속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번개 몇 개는 들어 있을 거다. 무서리와 탱볕 그리고 초승달까지 인고의 시간이 담겼을 니.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어떻게 쓰기에 따라 하루의 밀도가 다르다. 잠시 쉼을 가지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든 후 오히려 생산성이 나아졌다. 특히 시를 자주 접한 후 생각이 촉촉해졌다. 시가 일상에 쉼표가 되고 나눔의 재료가 되었다. 시를 음미하며 현재를 돌아보는 일이 곧 나를 아끼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를 사랑하며 오늘도 끌리는 시를 찾는다.


#첫마음#정채봉#대추한알#장석주#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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