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은유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처음부터 글을 쓰려한 건 아니다. 꾸준한 독서는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연결되었을 뿐이다. 글을 쓰고부터 회복탄력성이 커졌다. 상황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는다. 보이는 것의 이면을 찾고 관심 어린 질문도 하면서 상대의 주파수를 기억한다.
드러남의 차이일 뿐 누구나 상처와 스트레스를 안은 채 살아간다. 나만 유독 힘든 것 같고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될때가 있다. 몸은 무겁고 마음도 답답하다. 급할수록 실수하게 되고 주변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허둥지둥하는 것도 고민과 애씀의 임계량이 부족함으로 치부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많다. 그럴 때마다 자연은 넉넉함으로 안아준다.
직장 인근 뒷산을 가끔 걷는다. 점심 산책은 자연에 온몸을 접속하는 휴식 방식이다. 작은 변화를 사진에 담고 몇 장의 사진을 건진다면 큰 소득이다.
주변에는 하루 1,440분 동안 나를 위해 1%(15분)를 선물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일에 파묻혀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살피는 일은 뒷전이다. 그러다 건강 적신호에 비로소 병원이란 응급처방에 의지한다.
하루 15분은 나를 살리는 시간이다.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투자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몇 페이지 책을 읽을 수 있다. 반페이지 생각을 옮기거나 1000보를 걸을 수 있다. 하늘보며 주변을 감상하거나몇 장의 풍경 사진을 건질수도있다.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풀 수도,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느낄 수 있다. 보고 싶은 이에게 안부를 묻거나 기도할 수도 있다.
쌓인 문제와 힘듦을 극복할 나만의 방식이 있지 않은 채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공간만 바뀌어도 긴장이 풀린다. 깊은 호흡으로 숲의 청량감을 맘껏 즐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살 담은 나무에 주목하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넝쿨을 바라본다. 나무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넝쿨은 하늘을 향해 키가 자란다. 서로 외롭지 않게 기대면서.
"그래. 혼자 사는 것이 아닐 거야. 자연을 봐. 각자 고유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지누구를 모방하지는 않아. 하루를 잘 보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