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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해빗 P-자기 계발] 나에게 쓰는 편지

불안을 안고 사는 나에게

by 모티


안녕, 불안아!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써보려 해. 우리 함께한 시간을 조심스레 풀어 볼게. 어쩌면 이 이야기는 변명처럼 들릴지도 몰라. 사실, 너를 마주하기가 참 두려웠거든. 이제는 너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너를 품지 못할 때가 많았었어.


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 같아. 잠시 방심하면 내 마음을 온통 덮어버리니까. 그래서 너를 외면하고 싶었어. 상처 위에 소금을 뿌리는 존재로만 여겼으니까.


저학년 시절, 형과 여동생 사이에서 난 동네북이었지. 형은 장손대접을 받았고, 동생은 막내라 사랑받았으니까. 나는 중간에 낀 애매한 존재였어. 대든다고 혼나고, 돌보지 않는다고 욕먹는 게 일상이었어. 가족에게도 삐딱선을 탔었고, 친구들과도 자주 싸워 학교에선 문제아였어. 4학년 때 담임만이 내 편이 되어 주었어. 관계에 서툰 나는 혼자될까 봐 새끼 밴 고양이처럼 움츠리고 살았는지 몰라.


고등학교 때 그 불안은 절정에 이르렀지. 고 2 때 여드름 투성이 얼굴로 아스팔트 같다고 놀림받았을 때, 홀로 도시로 유학 와 병원조차 갈 수 없던 내 신세가 처량했어. 텅 빈 방, 깜깜한 밤, 그 속에서 널 자주 만났지. 부모님은 아마 내가 괜찮은 줄 아셨을 거야. 당구장에 살았던 줄도 모르거든.



군대에서도 다르지 않았어. 훈련소에서 교관의 말도 잘 못 알아듣는 나를 보며, 동료들은 불편해했지. 결국 ‘고문관’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는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었어. 오랫동안 쌓인 마음의 통증은 언젠가는 통제가 불가능해지더라. 환경을 바꿔도 그때뿐 이거든.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흔드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저 내가 약해서 그런 줄만 알았어. 불안은 종종 검은 그림자처럼 불쑥 찾아왔고, 날 긴장시켰지.

년 전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시기가 있었어. 잠을 푹 자는 게 간절한 소원이 되었고, 수면 부족은 널 더 키웠지. 네가 스트레스를 만나면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 태풍처럼 마음을 휩쓸었어.


그때의 하루는

“출근길은 고통길, 걸음은 천근만근 / 자존감은 바닥, 자신감은 우울/ 멀리 선 희극, 가까인 비극/ 넌 웃음, 난 눈물...” 이란 랩으로도 적어봤어.



그 시기에 만난 한 권의 책, <스몰스텝>은 가뭄에 내린 단비 같았어. 작가는 중년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주 작은 실천을 시작했어. 하루 한 문장 쓰기, 책 한 페이지 읽기, 영어 단어 3개 외우기, 하루 30분 걷기, 그렇게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더라고. 나도 할 수 있겠더라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그 사실만으로 큰 위로가 되었어.

그래서 결심했지.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로 삼기로”

성경 필사, 하루 15분 읽기, 감사 일기 등 매일 기록하며 지난한 시간을 견딘 거야.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지. 몇 달이 지나, 너는 조금씩 잠잠해졌어. 너와 함께한 여정은 험난했지만,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졌어. 이제는 네가 갑자기 찾아와도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아.

“또 왔네, 무슨 일이야?”


그렇게 너에게 묻고, 내 안을 들여다봐. 언제 불안한지, 어떤 상황에 민감한지. 그 이유를 찾고, 라벨을 붙이면 넌 신기하게도 조용해지더라.

최근에 읽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어. 달리기는 승부가 아니라 매일 어제의 나와 마주하는 일이라고. 그도 다양한 불안을 달리기로 이겨낸 건 아닐까. “고통은 순간이지만, 그것을 견뎌낸 경험은 오래 남는다.” 이 문장이 참 깊게 남았어.

오늘 아침 모처럼 달리기를 했어. 뛰다가 금방 숨이 차서 걷게 된 거야. 내 페이스를 몰랐던 거지. 자주 뛰는 사람은 적정 속도를 알아. 그래서 무리하지 않아 오래 뛸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마음만 앞서면 금방 멈추게 되거든. 쉽고, 편하며 빠르게 얻는 길은 없는 거 같아. 너를 대하는 것도 페이스를 모른 채 뛰는 것과 같았으니까.



불안아,

이제 나는 너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어. 너는 나에게 준비하게 하고, 고민하게 해 줬어. 긍정적인 부분을 몰랐던 거지. 더는 널 미워하지 않아. 네 덕분에 나는 성장했고, 어쩌면 지금의 나도 너로 인해 가능했는지도 몰라. 어제 우연히 들은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을 대신해 줘.


“언젠가는 닿게 될 거라 믿었어. 끝도 없는 시간 속을 달려 나에게 기나긴 밤 수평선을 넘어와 결국 만나게 돼 우리는 어떤 순간에라도 서로를 찾아낼 거야. 시선의 끝엔. 넌 나의 빛이 되고 난 너의 바다가 되어 채워져 가. 두렵지 않아 어떤 밤에도 나를 찾아줄 걸 알고 있어. 내가 널 안아 줄게.”

<박혜원, 가장 찬란한 빛으로 쏟아지는>


늦었지만 너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어 참 다행이야. 진심으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넌 또 다른 나였으니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 이가 말했듯,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어."

불안도 결국은 나를 더 안전하게, 더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이제는 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 것 같아. 긴장도, 초조함도, 그리고 너도 삶의 일부라는 걸. 앞으로도 네가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일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야. 누구도 완벽할 수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그걸 받아들이며 살려고 해.

나는 오늘도 작은 걸음을 내딛으며, 마음 근육을 조금씩 단련해 갈 거야.


너를 더 따뜻하게 품을 수 있도록.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 잠언 25장 28절

#불안#코어해빗#자기 계발#편지#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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